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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 세상 끝과 저 세상 시작의 그날을 /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3 조회수923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는 묵시적이고도 종말론적인 당신의 재림인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이 날의 출현에 대해서 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긴장’을 지니되, 상상할 수 없는

이적을 동반하는 가시적인 현상으로 만의 다가옴에는 어쩜 적정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분명히 선언하셨다.

지금 바로 여기에도 그 때 그 나라임을 밝히셨다.

이는 그때와 그 장소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시는 것일 게다.

 

흔히들 세속에서 일상으로 말하는 어떤 때와 장소는 그저 시공을 일컫는 때와 일정 공간이리라.

그러나 그분께서 재림하는 그날인 ‘하느님 나라’는

현존하는 우리네 시공과는 상상의 차원을 넘는 차이가 있으리라.

그것은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실제로 체험하는 그분께서 직접 ‘위에서’ 개입하시는 그 때이기에.

그리고 엄연히 ‘실재’로서 현존하는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는 그 자리이기에.

그러기에 우리는 그 날의 출현을 하느님 나라를 반드시 겪는

단 하나의 마지막 ‘사건’으로 체험하게 될 게다.

 

이렇게 이 세상은 순간 저세상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끝이 분명히 있다.

이 끝과 시작인 종말은 연속을 구분 짓는 사건으로, 자연 저세상을 연결한다.

그러니 이 세상 모든 게 저곳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저 세상 삶의 바탕일 게다.

예수님께서는 이 날을 ‘심판하는 날’이란다.

하느님의 창조물 모두가 받아야 할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이라나.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정말 비장하게 이 중요한 종말을

아무렇게 준비 없이 사는 우리를 정말 안타깝게 여기신다.

 

가끔 미사 때 강론에서 오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심판의 한 모습을 간단히 더듬어 보자.

온갖 사치를 누리며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단다.

천국에 도착하자 그녀는 천사의 안내를 받았다.

여인은 아름다운 저택들을 지나치며 그중의 하나가 자기가 살 집이려니 생각했다나.

큰길을 지나니 훨씬 작은 변두리가 나왔다.

바로 그 언저리에 오두막보다 훨씬 더 나을 게 없는 한 초라한 집에 이르렀다.

 

천사는 말했다. “이게 네가 살 집이다.”

천사의 이 말에 그녀는 말했다. “뭐라고요? 저 집에서요? 저기서는 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천사는 단호했다.

“안됐구나. 하지만 네가 올려 보낸 자재들로는 저 정도로 지을 수밖에 없었단다.”

‘마음에 뿌린 씨앗’이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이다. 현세와 하늘의 곳간이 이렇게 연결된다는 거다.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이 ‘걸걸걸’ 하며 후회한단다.

그들 대부분은 죽기 전에 ‘좀 더 사랑할 걸, 더 베풀 걸’, 더 참을 걸’이라며 한탄한다나.

그들이 하는 이 말들은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는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요 의미를 일깨워 준다.

죽음을 잘 준비하려면 평소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죽음의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인 거니까.

 

마치 천 년도 더 살 것처럼 온갖 탐욕과 집착에 젖었을 때는 아예 몰랐던 인생의 진정한 숨은 가치가,

모든 걸 내려놓는 그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각자의 삶 안에서, 자기만이 가진 고유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숨어 있다.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산 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그 때에 정녕 후회할 게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하며 산 이는 죽음 저 너머의 세계도 결코 낯설지 않으리라.

 

예수님은 이 마지막 날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어도,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란다.

이는 구원받을 이와 그러지 못할 이가 반드시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구원은 신분보다는 자신만이 지나온 고유한 삶이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진정으로 실현하였나를 두고 이루어지리라.

 

사실 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사건은 물론,

또한 그 때의 사건이기에 실상 이 세상에는 그리 매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 끝이 호기심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삶의 결과이니까.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저 세상이 결정되니까.

이 세상 인연과 체험들이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님을 되새기자.

이렇게 이 모든 건 저 세상을 살아갈 기초와 바탕이 될 게다.

믿는 이에게는 이 종말의 준비는 이처럼 중요하리라.

따라서 저 하느님 나라가 자연스레 지금의 일상에서 현존하는 삶을 누려야만 할 게다.

이 세상 끝과 저 세상 시작의 그날을 낙엽 지는 이 계절에 우리의 삶을 통해 차분히 한 번 되돌아보자.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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