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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3 조회수1,291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I tell you,
on that night there will be two people in one bed;
one will be taken, the other left.
And there will be two women grinding meal together;
one will be taken, the other left.
(Lk.17,24-25)
 
 
제1독서 지혜 13,1-9
복음 루카 17,26-37
 

제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지요)에 다닐 때, 성적표에는 숫자로 표시되는 점수가 아니라 수우미양가로 성적표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수를 받으면 기분이 아주 좋았고, 우를 받으면 그저 그랬고, 그에 반해서 미 이하를 받으면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성적표에 매겨진 수우미양가의 의미가 떠올려봅니다. 秀, 優, 美, 良, 可라는 한자의 뜻을 보면 나쁜 성적이 없습니다.

빼어날 수(秀), 넉넉할 우(優), 아름다울 미(美), 좋을 양(良), 옳을 가(可)입니다. 여기에 나쁜 말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점수를 이렇게 표시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낙제 점수인 ‘가’를 받았다 할지라도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거의 낙제 점수인 ‘양’이어도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솔직히 모두가 100점을 맞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낙제와 같은 양, 가를 맞아도 실망하지 말라고, 이것 역시 좋은 것이며 틀린 것이 아님을 말했던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세상은 모든 것을 점수로 표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떤 영적인 기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을 내세워서 점수로 표시하지요. 그러다보니 삶 자체도 ‘몇 점 인생’이라는 식으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가 과연 하느님 아버지께도 그대로 이어질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노아와 롯의 때와 사람의 아들의 때는 하느님의 심판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갑작스런 심판에 대비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우선 옥상에 있는 이는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지막 날이 왔을 때 집 안에 있는 세간을 챙기러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버리라는 것으로, 영적인 삶에서 육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말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영적인 일을 계속해야지 세상의 것들을 향해 뒤로 돌아봐서는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갑작스런 심판에 대비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점수를 매기기에 급급한 육적인 삶에 집착하고 미련을 가지는 것으로는 절대로 그 심판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영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심판에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인 것입니다.

세상의 점수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것만을 바라보려고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점수로 일일이 따지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공부 못한다고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라, 공부를 못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새벽에 해봅니다.

자기 안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발견한 사람은 노벨상을 받은 어떤 발견보다 소중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해(로베르 두아노).


양산의 법기수원지입니다.

 

시간 참 빠릅니다.

어렸을 때에는 시간이 참 느리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지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시간은 더디게 가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나이에 이른 순간부터는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만 나이를 먹지 않았으면 하는데, 하루가 1초처럼 지나가고 한 달이 하루처럼 그리고 일 년이 한 달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른 시간의 흐름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아마 어른이 된 후부터 시간이 점점 빨리 흐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인생 중 한 시기의 시간에 대한 느낌은 그 사람의 나이, 즉 인생의 길이와 반비례한다.’

예를 들어 한 살짜리 아이가 1년을 1로 느낀다면 열 살짜리 아이는 1년을 10분의 1로, 그리고 80세 어르신은 1년은 80분의 1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즉,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빨라지는 시간 속에서 지금 해야 할 것들을 바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따라서 그 누구도 모르는 그 시간을 대비해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빠르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지금에 충실하고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삶을 산다면 오히려 시간의 빠름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만큼 주님 곁으로 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신라시대에 세워진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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