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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14 토/ 희망 속에 바치는 끈질긴 기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3 조회수1,230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32주 토 루카 18,1-8(15.11.14)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7-8)




The parable of the persistent widow




 희망 속에 바치는 끈질긴 기도

읍아수유(泣兒授乳)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청하고 요구해야 얻을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저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없이 무감각하고 안일하게, 생각 없이 살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영성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절박함, 신앙의 도전들이 주는 거룩한 긴장감, 영적 민감성 없이 그저 현상을 좇아 하루를 사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우리에게 강한 자극을 줍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재판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많은 재판관들은 뇌물이나 권력을 이용하지 않는 한 억울한 이들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데 도움을 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뇌물을 쓸 돈도 힘도 없는 한 과부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18,2), ‘불의한’(18,6)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조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한동안 청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괴롭히리라 생각하여 들어주기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18,5). 불의한 재판관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야 제자들과 하느님을 성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이 밤낮으로 부르짖을 때 지체 없이 그 청을 틀림없이 들어주실 것입니다(18,7-8).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의 아들이 오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뜻을 실행해야 하기에 온갖 시련을 겪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복음 가치를 상대화하며, 돈의 힘을 우상화하는 이 시대에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불러옵니다. 시련 중에 주님께 희망을 두며 “낙심하지 말고”(18,1) 청한 것을 받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항상 기도함으로써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통과 불의 앞에서 세상과 타협하거나 신앙인으로서의 결단을 회피해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며 세상적인 해결책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과 고통 중에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신앙인답게 늘 참을성을 갖고 끝까지 기도하고 “들어 주신다”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기도는 사랑과 믿음 안에서의 견딤과 기다림’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기도의 호흡 안에서 ‘끝까지’ 청을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끈기 있는 ‘사랑의 기다림’이며,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마태 10,22)이기 때문입니다. 보잘것없는 ‘과부’와 같은 존재인 우리도 한없는 자비를 지니신 하느님을 믿고 참을성 있게 끝까지 기도해야겠습니다.

결국 고통과 시련 중에 하느님 앞에서 지닐 두 가지 태도는 확고한 믿음과 사랑의 인내입니다. 견디며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참 사랑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우리 가운데 사랑과 정의의 꽃이 피는 그날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일상의 고통과 시련을 사랑으로 견뎌내는 복된 견딤의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telegram.me/kif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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