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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4 조회수847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마르12,38-44. 11.08)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이 봉헌을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십니다. 부자가 많이 내는 것과 과부가 옷 속에서 돈을 찾아 내는 것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야, 이리와 봐. 저 사람들 중에 저 가난한 과부가 제일 많이 냈어. 저 과부는 궁핍함 가운데 자기 생활비를 다 냈어. 그러니 저 과부가 제일 많이 낸 거야. 하느님께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중요한 거야.’하며 가르침을 주십니다.

 

제가 앞에 앉아서 누가 얼마를 봉헌하나하고 쳐다보고 있다면 여러분들은 참 부담스러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은 보지 않고 대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안 보지만 예수님이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정성스런 마음으로 봉헌하기를 기다리시며 보고 계십니다. 많고 적고를 떠나서 얼마나 정성스런 마음으로 봉헌하는가, 내가 한 주를 생활하다가 깨끗한 지폐가 생겼을 때 ‘아, 이 돈은 주님께 봉헌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잘 준비했다가 봉헌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런 정성을 보시고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만약 오늘 월급을 받았다면 매일 자장면만 사드렸는데 오늘은 소갈비 한번 사드려야지 하는 기쁜 마음으로 봉헌할 때 주님께 갈비 한번 대접해드린 것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믿음을 갖고 하는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가 미사를 드리면서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누가 헌금을 얼마 하는가가 아니라 늦게 미사에 오시는 분들이 어디에 앉아야 하나 염려하며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리가 빈 곳이 있긴 있는데 먼저오는분들이 편하다고 가장자리에 먼저 앉아버리면 늦게 온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불편합니다. 전례 도중에 다른 사람 앞으로 지나가야 하니 미안해서 머뭇거릴 때 마다 사제 입장에서 보기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장자리가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가 앉는 것도 작은 배려인데 봉헌하고 영성체 하러 나올 때 편하다는 이유로 끝자리를 먼저 앉아버리면 나중에 오는 분이 그 분을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불편합니다. 길어야 1시간인데 두 번 나올 때만 제외하면 미사 중에는 어느 자리에 앉으나 똑같습니다.

 

내가 편한 것보다 남이 편한 것을 더 생각하는 작은 배려심이 아쉽습니다.

 

그러므로 누구 특정인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전체 신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성당에 오실 때면 내가 제일 안쪽에 앉겠다, 내가 제일 앞쪽에 앉겠다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맨 앞에 한 줄은 거의 비어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맨 앞부터 안쪽으로 잘 앉으면 늦게 오는 사람들도 전례를 방해하지 않게 되고 늦은 사람 입장에서는 늦은 것도 미안한데 전례 방해가 되면 더 미안해지니까 덜 미안하게 빨리 전례에 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도 배려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지켜보시니 저도 오늘 계속 전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까 제가 지하주차장에 가봤더니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오셨는데 장애인용 주차장에 다른 차들이 다 차있어서 힘들게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오늘같이 미끄러운 날은 더욱 위험하니 우리가 관공서나 다른 건물에서 장애인용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는 것처럼 성당에서도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당 주차장이 좁은 것은 다 제 잘못이고 제 탓입니다.

 

그러나 제가 바깥 도로에 주차장을 언덕 쪽부터 현암고등학교까지 다 만들어놓았으니 젊고 건강하신 분들은 어르신들이 주차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면 좋을 것입니다. 한분 한분이 그런 마음으로 임한다면 우리가 더욱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 자기 전부를 털어서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또한 사렙타의 과부는 한줌 밖에 남지 않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기꺼이 엘리야 예언자를 위해서 드리는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렙타의 과부에게 은총을 내려주셔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그 이후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는데 엘리야 예언자가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려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아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에게 선의를 베풀었을 때 하느님은 많은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선행을 할 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 하나하나를 다 보고 계시고 잊지 않으시고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지금 성당 사회복지분과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해서 안 입는 옷 특히 겨울옷을 봉헌 받아 가난한 외국인노동자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런 소식이 있을 때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당장 집에 가시면 내가 일 년, 이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이 있다면 비록 새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입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 가지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봉헌할 때 사랑이 실천됩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나누는 것도 봉헌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선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선도 중요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리에는 성인들과 천사들이 계시고 연옥영혼들이 있습니다. 연옥영혼들은 우리의 기도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희생해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들을 위해서 미사 드려 주고 연도해주는 것입니다.

 

 

 

많은 성인들이 그들을 위해서 미사를 드려 줄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죽이나 많은 영혼들이 연옥에 정체되어 있으면 성모님께서도 묵주기도 간주경으로 구원의 기도를 가르쳐서 묵주기도 바칠 때마다 연옥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도 대단히 큰 자선입니다.

 

오늘 과부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 그 눈으로 나 또한 바라보고 계시다는 마음으로 나는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정성으로 자선을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제까지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미래에 돈이 생기면, 시간이 나면 하리라가 아니라 지금부터 매일 매일, 매달 매달,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무금은 우리 신자들이 당연히 봉헌해야 합니다. 한 달에 얼마씩 책정을 하고 성실히 내야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입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50%만이 교무금을 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분들 중에는 냉담교우라든지 잘 나오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나오시면서도 교무금은 내지 않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책정을 하시고 매달 성실히 봉헌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특별히 위령성월의 11월1일부터 8일까지는 연옥영혼들에게 전대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여러분들의 조상님들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내려주시기를 청하고 또한 먼저 세상을 떠나신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영혼에 하느님의 자비가 풍부히 내리기를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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