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성장을 돕는 여러 도전들 / 복음의 기쁨 8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6 조회수597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희망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단다.’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의 기쁨은 어느 누구도 또 그 무엇도 우리에게서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이다(요한 16, 22참조).

세상과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게다.

그러한 악을 우리의 성장을 돕는 도전으로 받아들이자.

우리는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면서

성령께서 늘 비추시는 그 빛을 ‘신앙의 눈’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의 신앙은 갈릴래아 카나에서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 난 그 기적인,

물이 어떻게 포도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이 세상 끝날 그날에 그분께서 구분해서 거둘

밀이 어떻게 가라지들 가운데에서 자랄 수 있는지를 식별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로 고통 받으며 순진한 낙천주의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이

덜 관대해진다거나 성령을 덜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되리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따금,

종교적 열정으로 불타지만 올바른 판단력과 식별이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오늘날 세상에서 그들은 파멸과 불행만을 볼 뿐이다.

마치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처럼

대재앙만을 예견하는 불길한 운명의 예언자들과 우리가 결코 뜻을 같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시대에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를 인간관계의 새로운 질서로 이끌고 계신다.

이는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그리고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헤아릴 길 없는 드높은 계획의 완성을 지향하며,

이 계획안에서 모든 것이, 심지어 인간의 역경마저도 교회의 큰 선익을 위하여 쓰인다.

 

사실 무익한 비관주의는 비판받을 만하다. 무익은 말 그대로 낭비의 극치일 게다.

유익도 큰 보람찬 것을 요구하는 터에 무익은 배 이상의 손해이다.

본전도 사실 손해인 마당에 무익은 그런 꼴이다. 여기에 비관주의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비관은 발전은커녕 정체내지는 후퇴이리라.

그러니 무익한 비관주의에는 기쁨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고 봐야한다.

더구나 거기서 파생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 게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회의 사목 일꾼들이 겪는 여러 유혹에 관해서,

유독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라고 힘주어 경고하신다.

교황님은 선교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거부하여

마침내는 무기력한 나태의 상태에 빠지고 마는 상태를 개탄하시는 것 같다.

또 ‘복음의 기쁨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무한의 은총’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온갖 악과 교회의 만연된 여러 형태의 부조리가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거리를 준단다.

그래서 성령께서 늘 비추시는 그 빛을 ‘신앙의 눈’으로 알아보도록 제안하신다.

그러기에 ‘성장을 돕는 도전’으로 여길 것을 권고하신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