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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7 조회수1,354 추천수9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
 
“Zacchaeus,
come down quickly,
for today I must stay at your house.”
(Lk.19,5)
 
 
제1독서 2마카 6,18-31
복음 루카 19,1-10
 

어떤 젊은이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 대신 그를 강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젊은이에게 머리까지 강물에 들어가 숨쉬기 힘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나오라고 했습니다. 한참 후에 숨을 헐떡이며 강물에서 나온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물속 깊은 곳에 있었을 때 가장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만일 그대가 숨을 쉬기 원했던 만큼 지식을 원한다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보다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 높은 지위에 올라 있는 모습, 튼튼한 육체, 화목한 가정 등등.... 부러워할 것들이 정말로 많지요. 그런데 이러한 부러움을 받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분명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그 결실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러워하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노력해 보았으면 합니다. 분명히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하지요.

“바로 지금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불행히도 이 세상에는 피아노를 옮겨야 하는데 피아노 의자를 옮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여러분은 본질적인 피아노를 옮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수적인 피아노 의자만을 옮기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진실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세관장이었기에 바리사이들 눈에는 창녀들과 더불어 완전히 타락한 죄인의 본보기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관장이고 부자라는 부수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뒤로 하고 본질적인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는 겸손함과 적극성을 보여주지요. 그리고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머무르는, 그래서 구원의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본질적인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수적인 사회적 체면이나 세상의 지위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질적인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정상에 오른 자들을 시기하지 마라. 그들이 목숨 걸고 산비탈을 오를 때 그대는 혹시 평지에서 팔베개하고 달디단 낮잠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가? 때로는 나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죄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이외수).


자캐오가 올라갔다는 에리코의 돌무화과나무.

 

자기 고유의 몫에 충실해야 합니다.

어느 날, 아내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워낙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내는 남편에게 계속해서 졸라댑니다. 화를 내기도 하고, 또 애교도 부리면서 제발 한 마리만 키우자고 매달렸지요. 이렇게 한 달 동안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자, 남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합니다.

“여보, 내가 정말로 강아지를 싫어해서 그래. 그래도 정말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면, 내가 앞으로 개처럼 살게.”

어떻게 되었을지 그 다음의 일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개처럼 산다고 해서 키우고 싶은 강아지의 자리를 채울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 동물의 몫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유의 몫이 있으며, 그 몫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몫을 탐내지 말고, 대신 자기 자신의 고유 몫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인 것입니다.


개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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