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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8 조회수1,231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Lk.19.17)
 
 
 
제1독서 2마카 7,1.20-31
복음 루카 19,11ㄴ-28
 

우연히 텔레비전에 드라마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 아이가 부모가 미워서 삐딱하게 사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으며 잘 살기를 너무나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서 부모를 원수 보듯이 바라보며, 그래서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심지어 범죄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어떤 아이 한 명이 떠올려졌습니다. 부모가 너무 미워서 부모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사고를 치는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고를 치는 문제아가 되면 과연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까요? 점점 악의 세계에 빠지면서 스스로를 망칠 뿐입니다. 사실 도저히 용서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스스로 잘 살아야 합니다. 잘 살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망치면서까지 복수하겠다는 것, 이것이 과연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삐딱한 길로 걸어가는 우리들을 향해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길을 걸어갈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주님의 요구에 우리는 못 본 척 외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미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 비유 말씀을 보면서 종이 받은 보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종은 주인이 원하는 것만을 해야 합니다. 특히 주인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주인이 받은 이익과 종이 받은 이익 중에 누가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될까요? 당연히 주인이 받는 이익이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주인인 귀족은 어떤 이익도 없습니다. 벌어온 미나의 양에 따라서 마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고 있으며, 주인이 주었던 미나도 빼앗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의 미나를 빼앗아 자신의 재산을 메꾸는 것도 아니라 가장 많이 미나를 벌은 종에게 건네줍니다.

바로 이런 분이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미나를 나눠주시는 것은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주님의 요구에 얼마나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주님의 요구에 응답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면서, 더욱 더 주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러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진다(로저 로젠브리트).


대전교구의 부여성당입니다. 아는 선배신부님이 계셔서 놀러왔습니다.

 

잘 선택해야 합니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총알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총알택시답게 너무 빨리 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시기사에게 말했지요.

“아저씨, 속도를 좀 줄여주세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요.”

공포에 쌓인 손님은 어떻게 하냐면서 그러면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택시기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무서우면 저처럼 눈을 감으세요!”

눈을 감았다고 해서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두 눈을 부릅뜨고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위험이 찾아옵니까? 그때마다 눈을 꽉 감으면서 포기하겠습니까? 아니면 더욱 더 그 위험을 바라보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선택의 몫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바라본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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