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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의 우리 모습은 /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9 조회수696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원후 66년 로마 총독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큰돈을 강탈한다.

이에 유다인들이 반발하자 총독은 군인들을 성전 안에 배치하였고,

유다의 저항 세력들은 주둔해 있던 로마 군인들을 몰아낸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바쳐진 제단을 없애고, 이를 말리던 대제사장마저 살해한다.

제1차 유다 독립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소식을 접한 네로 황제는 진압군을 파견하여 북쪽의 갈릴래아부터 공격을 개시한다.

그래서 67년 이스라엘 북부는 장악되었고,

69년에는 사령관 티투스(Titus)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개시 5개월 만에 성벽은 무너졌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했다. 기원후 70년의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이러한 멸망을 내다보시며 슬픔에 잠기신다.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보속임을 아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비극적 운명이 그들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란다.

‘예루살렘’이 ‘평화’라는 뜻의 ‘살렘’이라는 낱말을 담고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비극적 역설을 드러낸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 도시의 현실을 자주 떠올린다.

세 종교의 성지를 품고 있는 거룩한 곳이면서도

오늘날 지독한 반목과 폭력의 상징이 되는 현실이 우리의 마음을 정녕 무겁게 한다.

 

사실 ‘평화의 도시’ 또는 ‘평화의 근원지’라는 뜻을 지닌 예루살렘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뒤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 예루살렘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때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며 가슴 아파하신다.

파멸의 원인은 ‘독선’이다. 유다인만이 구원받고, 율법만 지키면 어떤 간섭도 없다는 ‘자만심’이다.

고칠 수 있는 길은 이 시련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은 불탔고, 성전은 로마인들의 손에 부서지고 말았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일 게다.

‘선택된 민족’일지라도 선민답게 살지 않으면 당연히 고통을 겪는다.

위대한 민족이라는 무늬만 믿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기에,

이스라엘은 로마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내 신앙은 옳고 남의 믿음은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여기는지 돌아봐야 하리라.

자신만 ‘구원된다.’라는 생각만큼 옹졸한 생각은 없다.

하느님께서는 만민의 주님이시지, ‘어떤 특정인’의 주님은 아니시기에.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유다인들은 시련을 겪었다.

그분께서는 우월감에 점점 악해지는 이스라엘에게 충격 요법을 쓰신 것이다.

성전의 멸망이라는 ‘히든카드’를 꺼내신 거다.

우리에게도 언제 이런 엄벌을 내리실지 자신의 지금의 삶의 모습을 꼼꼼하게 묵상해 봐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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