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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19 조회수1,149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As Jesus drew near Jerusalem,
he saw the city and wept over it, saying,
“If this day you only knew
what makes for peace?
but now it is hidden from your eyes.
(Lk.19,41-42)
 
 
 
제1독서 1마카 2,15-29
복음 루카 19,41-44
 

흔히 텔레비전을 두고서 바보상자라고 말을 하지요. 저 역시 이 말에 동의를 하면서 잘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들어서는 텔레비전을 참 많이 봅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얻게 되는 자료가 꽤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의 자료로 쓸 만한 정보를 많이 얻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교훈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시사물, 드라마, 심지어 개그 프로그램까지도 배울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보상자’라는 명칭을 붙일까요? 오히려 텔레비전을 많이 봐야 한다고 권장해야 할 것이 아닐까요?

아무 생각 없이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눈과 귀만을 집중시키면서 생각 없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텔레비전의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얼굴을 보면 정신줄을 어딘가에 놓고 있는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안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또 생각을 한다면 분명히 텔레비전 역시 좋은 것을 가르쳐주는 멋진 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자매님께서 자신의 어린 자녀가 텔레비전만 본다면서 걱정과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대화도 할 수 없고, 나이도 어린데 벌써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가득한데 자신의 뜻과는 달리 텔레비전에 푹 빠져 사는 자녀의 모습에 안타까운 것이지요.

텔레비전만 그럴까요? 어쩌면 우리 삶 곳곳에서 안타까움을 간직하게 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재미만을 주고 있는 것만을 추구하면서 살게 된다면, 분명히 바보상자 속에 처박혀 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일상 안에서도 생각하고 의미를 찾는다면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멋진 세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생각 없이 순간의 만족만을 채우며 사는 바보 같은 모습을 원하실까요? 앞서 어린 자녀의 어머니께서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셨던 것처럼, 당신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우십니다. 단순히 예루살렘 도성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겪게 되는 사람들의 아픔을 떠올리시면서 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죄와 악에 물들어 타락해 있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며 우시는 것입니다. 죄와 악이 사방에서 조여들면서 점점 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의 처지가 안타까우셨던 것이지요.

이는 2천 년 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만은 아닙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간직하고 계실 것입니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있는 모습에, 사랑보다는 미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주님께서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제는 주님께 눈물보다는 웃음을 전해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면 분명히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에디 캔터).


가을의 막바지에 부여 부소산성 숲길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십시오.

‘돌 시인’이라 불리는 박진식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7살부터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란 희귀병에 걸려 칼슘 과다 분비로 몸이 돌처럼 굳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9살부터는 거의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지요. 13살부터는 몸에 축적된 석회가 관절에 엉켜 붙었고, 체내 욕창으로 몸은 계속 부었고, 잠에서 깨면 석회가 뚫고 나와 피부 곳곳이 터지며 생살이 빨간 젤리처럼 핏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25살 때, 극심한 통증과 함께 폐와 심장까지 석회화가 진행되어 몸의 30%가 마네킹처럼 되었고, 한번은 어머니가 쇠꼬챙이로 몸 안의 석회를 긁어내다가 쇠꼬챙이가 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태처럼만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희망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할 수 있었고, 독서와 함께 시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책을 내게 되지요. 이 책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살기 힘들어 절망하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읽고 부디 힘을 내십시오. 저는 꿈꿀 수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현실에 처했어도 살아 있는 한 꿈을 버리진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눈물조차 혼자서 닦을 수 없는 사람이 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희망을 외칩니다. 그런데 이분 앞에서 과연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한 시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내 삶 안에서 얼마나 꿈과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꿈과 희망은 분명히 발견될 수 있습니다. 삶이 힘들어도 다시 한 번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세요.


고란사의 약수. 한번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고 합니다. 저 좀 젊어진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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