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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1 조회수1,089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For whoever does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Mt.12,50)
 
 
제1독서 즈카 2,14-17
복음 마태 12,46-50
 

어떤 사람이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 선생님을 찾아와서 야생 거위를 기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위에게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는 몸이 점점 뚱뚱해져서 날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거위가 음식을 전혀 먹지를 않고 한 열흘쯤 굶더라는 것입니다. 뚱뚱해졌던 몸이 점점 가벼워졌고 그리고 얼마 뒤에 스스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호 이익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

사람이 주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자신의 야생성이 사라졌겠지요. 물론 굳이 먹이를 찾아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육되면 될수록 자신의 소중한 자유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생하지 않는 편안한 삶이 좋을까요? 아니면 많은 수고를 동반해도 자유로운 삶이 행복할까요?

우리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하고 쉬운 삶을 살고 싶지만,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은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를 잘 지키면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비록 편하고 쉬운 삶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편하고 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잘 지키는 삶, 그래서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러면서 성모님의 봉헌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봉헌은 과연 저절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분명히 성모님께서 선택하신 것이고, 스스로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성모님과 친척들을 향해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시지요. 분명히 서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이미 하느님께 봉헌되신 성모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해 어떤 서운함의 표시를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받아들이시고, 그 뜻을 따르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곧 온전히 당신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사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믿음 없이 제대로 봉헌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봉헌 없이 주님과의 완벽한 일치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결국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정말로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노력은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만 느끼지 못할 뿐,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데스몬드 투투).


성모님의 아픔. 그러나 참 봉헌으로 이겨내십니다.

 

두 친구가 주고받는 말

나이가 꽉 찬 노처녀인 두 친구가 만났습니다. 한 친구가 먼저 이렇게 말했지요.

“결혼을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결혼하자는 사람도 없고....”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신 있게 말합니다.

“난 이제까지 제발 결혼해달라는 부탁을 수없이 받았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받을 걸?”

친구는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아니! 너에게 나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 그래, 그런 부탁을 한 사람이 누군데?”

이에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합니다.

“우리 부모님!”

부모님께 당연히 결혼하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청혼을 하는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박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결론을 미리 내리고서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올바로 이해하기보다는 그릇된 관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쩌면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그러했던 것은 아닐까요?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주님의 뜻이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어린시절 봉헌되신 성모님과 어머니이신 안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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