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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쁨은 정성이 담긴 봉헌에서 /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3 조회수670 추천수0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하루에 24시간, 일주일에 168시간을 산다. 그런데 그게 결코 많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하고, 잠자고, 밥 먹고, 만나고, 아이 보는 시간 등을 빼면 여유 있는 게 부족하리라.

일주일에서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할 수 있는 시간은

마치 렙톤 두 닢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 뜻대로 사용할 수 없지만 그 시간마저 하느님께 바친다면,

그분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가치 있게 보시리라.

 

그러나 이를 위해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게 있다.

물질이든 시간이든 간에 봉헌은 주님께 바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쓰고 남은 돈이나 시간을 바치고자 한다면 그 가치는 떨어질 게다.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봉헌하였다.

이는 쓰고 남은 돈을 봉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주님께 바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거다.

생활비 전부를 바친 그녀의 헌금은 비록 적지만,

하느님께는 부유한 그 어떤 이의 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리라.

과부가 가진 것을 다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서 보살펴 주신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부가 헌금함에 모두 넣은 뒤의 손은 빈 털털이였다.

그러나 그 빈손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하느님께 바친 손이었다.

비록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분께 바친 빈손이야말로 가장 거룩하였다.

그녀의 그 손을 그분 눈으로 보면 가장 풍성한 부(富)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그녀를 칭찬하신 것은

비단 봉헌한 액수가 상대적으로 부자보다 더 높았기 때문만이 결코 아니다.

그분께서는 바친 돈의 정도가 아닌,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의탁을 드러내는 그 여인의 행위를 두고 칭찬하신 것이다.

그 여인이 가졌던 돈이 모두 해서 한 잔 커피 값만도 못한

렙톤 두 닢이었다는 건 그가 얼마나 궁핍하고 가난한지를 말해 주는 거니까.

 

교회에서 헌금을 바치는 것은 ‘적선 행위’가 아닌,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는 ‘봉헌 행위’이다.

사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나 봉헌할 때에 세속의 마음으로는 얼마나 많이 재고 계산하는지?

기껏 그 하잘 것 없는 체면을 세우거나 생색을 내려고,

또 뒤에 자신에게 돌아올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따지는 게 아닌지?

아름다운 헌금은 삶을 봉헌하는 거다. 그것은 당당하고 좋아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성이 되니까. 액수의 많고 적음은 별문제이다. 정성이 들어가야 참된 헌금이 될 게다.

 

‘돈 있는 이가 구원받는다.’라는 그 못난 말을 종종 듣는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의 소치이다.

지나치는 말이라도 그런 말은 곤란하다. 돈과 구원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돈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헌금도 정성이 빠진다면 소용이 없다. 믿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정성이다.

그러니 늘 삶을 돌아봐야 한다. 하찮은 일에도 정성을 쏟으면 기쁨이 찾아온다.

주님께서는 그 정성을 눈여겨보시리라.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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