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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가감으로 두려움의 극복 / 복음의 기쁨 88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4 조회수768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기독교 이상은 언제나, 의심과 끊임없는 불신, 나를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

세상에서 우리가 지닌 온갖 방어적인 태도, 이 모든 것을 극복하라는 요청이리라.

성경 곳곳에도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내용들이 있다.

하느님께서도 그 나이 많은 아브람에게 오늘날처럼 이토록 많은 후손을 주시고자 부르실 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창세 15,1ㄴ)’라고 안심을 시키셨다.

 

가브리엘 천사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가서는 처녀 마리아를 만나면서도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라고 단단히 타일렀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인사까지 하였지만

그 두려워하는 모습에 어쩔 수가 없었을 게다.

물론 세례자 요한 출생의 예고 때도 분향하는 즈카르야에게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분명히 일러 주었다.

 

사실 많은 이가 다른 이들에게 벗어나

자신의 안락 또는 친구들의 좁은 울타리에서 복음의 현실적인 사회적 측면을 포기한다.

육신도 없고 십자가도 없는 순전히 영적인 그리스도를 원하는 일부 사람들처럼, 그들도 정교한 장비로,

곧 명령에 따라 껐다 켤 수 있는 화면과 장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대인 관계를 원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복음은 과감히 다른 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라고,

곧 그들의 육체적 현존과 만나라고 끊임없이 초대한다.

이는 그들의 고통과 호소를 또 잘 번져 나가는 그들의 기쁨을 직접 대면하여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이들, 우리에게는 도전이 되는 그들의 고통과 탄원을,

친밀하고 지속적인 우리의 상호활동에 영향을 주는 그들만의 기쁨으로

직접 만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강생하신 하느님 아드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자기 증여, 공동체 소속감, 봉사, 그리고 다른 이들과 직접 만나 이루려는 화해와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분께서는 강생을 통하여 온유한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육화하시어 당신 스스로를 송두리째 내어주시면서 까지 모든 이에게 사랑과 온유로 화해시키려 하셨다.

우리 역시 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복음 선포자로 다가가야 할 ‘참 신앙인’이리라.

 

지금도 많은 이들이 다른 이에게 벗어나 자신의 자유가 주는 편안함으로 피하려 한다.

혹은 복음이 갖고 있는 사회적 측면인 현실을 부정하면서

가까운 이들 끼리만의 소규모 모임 속으로 빠지려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런 나만의 일방적인 기도에서만

그리스도를 바라는 것 같은 소극적인 모습을 경계하란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습관적 불신, 각자의 자유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과감히 벗어나,

강생하신 그분처럼 만남과 화해의 삶으로 온유한 사랑을 알려야 하리라.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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