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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립은 영광이 없는 삶 / 복음의 기쁨 8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6 조회수714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응답으로

프라치스코 교황님은 각 분야에서의 ‘고립’에 대해서 심하게 주장하신다.

특히 교황님께서는 사제들에게,

‘그대들은 출세에 신경 쓰지 말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가 최고라는 권위주의, 성직자가 최고라는 성직자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무릎 꿇어야 합니다.’라고 ‘가난한 이에게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권위’라고 강조하신다. 이는 교회가 바깥으로 나아가는 사명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일침이기도하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치유해 주고 해방시키며 생명과 평화로 가득 채워 주면서,

또한 형제적 친교와 선교의 풍요로움으로 부르는 영성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그릇된 해결책들에 속아 넘어가고 말 것이다.

고립은 자기 안에 머무르려는 성향으로서, 하느님을 배제하는 그릇된 자율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는 병적인 개인주의에 꼭 들어맞는 일종의 영적 소비주의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영성만을 내세워 문을 닫으면 아마도 교회는 결국은 폐쇄될 게다.

 

우리 시대의 특징인 신성 회귀나 영성 추구는 그 성격이 모호한 현상으로 여겨지는 소지가 다분히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무신론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을 찾는 많은 사람의 목마름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이질적인 해결책으로서 이 목마름을 채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게다.

또한 육신이 없고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 예수님으로 목마름을 채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도전은 무신론이라기에는

오히려 많은 이가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에 적합하게 응답하는 것이다.

그들이 고립의 길로 가면서 그 갈증을 풀지 않도록, 또는 다른 이들에 관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한, 그런 것으로 갈증을 풀지 않도록 말이다.

교회는 적극적인 선교로 복음의 기쁨을 전해야만 한다.

 

고립은 내재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 고립은 하느님께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거짓 자율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종교의 영역에서 고립은

해로운 자신만의 개인주의에 맞춘 영적 소비주의의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게다.

이것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영성에 대한 요구와

거룩한 것에로의 회귀는 분명치 않은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사목 일꾼들이 겪는 유혹들 가운데 공동체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안에서의 직무를 통해 각자가 성화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이들이 자신에게 치유와 해방을 주고, 생명과 평화를 주는 영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자신의 생활을 참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이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도 못하고 해결책 없는 고립만을 자초하는 쪽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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