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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9 조회수1,064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Be vigilant at all times
and pray that you have the strength
to escape the tribulations that are imminent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Lk.21,36)
 
 
제1독서 예례 33,14-16
제2독서 1테살 3,12ㅡ4,2
복음 루카 21,25-28.34-36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대림시기이지요. 이 시기의 시작인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요즘에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안식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내년에 어디로 가세요?”

작년에 안식년을 준비한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안식년의 막바지에 서 있습니다.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부임지에서 힘차게 살 것을 생각하면서 기쁘게 빠른 시간의 흐름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어디로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일 년 동안 공부를 했던 것과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새로운 곳에서 펼쳐보기 위해서 계획을 오랫동안 세워두고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안식년이 끝났다는 것이 절대로 아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빨리 시간이 지나서 내년의 인사이동 날이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생각해보니 잘 준비를 하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학창시절에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해서 자신이 생겼을 때에는 빨리 시험 시간이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차일피일 시험공부를 미루면서 공부를 하지 않다보면 어느 순간에 다가온 시험 시간에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한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기쁘게 맞이하는가? 아니면 피하고 싶은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정적 미래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는 어떨까요? 당연히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잘 준비한 사람에게 죽음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시간이 될 것이고,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은 하느님을 뵙기에 너무나도 힘든 최악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과 함께, 사람들이 하늘의 표징들을 보면 구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표징은 무엇일까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두려움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끝 날이 가깝다는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두려움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 등의 문제를 포함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두려움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끝 날이 가깝다는 징조라고 하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방탕과 만취 그리고 일상의 근심은 세상의 종말을 경계하는 마음을 흐리게 만들어서 우리의 준비를 소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교회 전례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 스스로를 조심해서 잘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끝 날이 두렵지 않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기에 특별히 좋은 날은 없다(인디언 추장의 말).


화투에 글자를 새겨서 의미가 생긴 것처럼, 우리 마음에도 주님을 새겨야 합니다.

 

공감능력

요즘에 강의 준비를 위해서 드라마를 종종 봅니다. 드라마의 장면을 강의 소재로 쓰면 서로 공감을 하게 되어 좋은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많은 드라마를 다 보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8배 빠른 속도로 보면서 강의 때 쓸만한 장면을 찾습니다. 그러다보니 솔직히 드라마의 내용을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본 드라마는 완전히 푹 빠져서 정상적인 속도로 천천히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너무 안 되었고 슬픈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슬퍼서 눈물까지도 흘렸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허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시지 않습니까?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실제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자에게 아주 커다란 주사를 맞고 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 안의 사람은 큰 주사를 맞으면서 아주 괴로워했지요. 그런데 바로 이 순간 뇌의 통증센터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을 뇌 자기공명영상장치를 통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즉, 단순히 ‘아프겠구나.’ 정도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공감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우리는 외면할 수 없도록, 다시 말해 사랑하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본 모습인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함께 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종말을 잘 준비하라는 말씀은 곧 원래 우리의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정겨운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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