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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1 조회수1,226 추천수11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I give you praise,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for although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the learned
you have revealed them to the childlike.
(lk.10,21)
 
 
제1독서 이사 11,1-10
복음 루카 10,21-24
 

제가 초등학생 때에 정말로 부러워했던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장난도 심했고 또한 노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쉬는 시간과 방과 후에는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하지만 시험만 봤다하면 항상 100점입니다. 실수로 몇 개 틀릴 만도 한데 제가 보았던 1년 동안은 늘 100점이고 일등이었습니다. 실수를 많이 하고 공부도 잘 못했던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 친구가 생각나서 다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무도 이 친구의 근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특이한 것은 이 친구가 그렇게 공부를 잘 했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도 잘 못하고 선생님께도 많이 혼났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에 대해서도 공부를 못했다는 것도 또 선생님께 혼났다는 사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기억이란 불완전합니다.

당시에는 노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공부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맞아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고, 또 그래야 사회에 나가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도식을 세우고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 바라본 현실은 반드시 그 도식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초등학생 때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성실하게 자신이 잘 하는 분야에 묵묵히 노력했던 친구들이 사회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어렸을 때에는 지진아라는 평가를 받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니 역사 속에 한 획을 긋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마다 똑같은 능력들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을 모아 함께 함으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만능의 몸으로 창조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능력이 없다고 불평불만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주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기뻐하십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배운 것도 없었고, 세상 안에서 자랑할 만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믿음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함께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부족하고 나약한 제자들을 내치지 않으시지요. 성실하게 조금씩 주님 앞으로 나오는 모습에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하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재능과 능력이 주어지지 못했다고 원망하고 지금 자리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성실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주님께서는 기쁘게 우리를 받아주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의 기초는 사랑이다(임정일).


시에나의 성 안사노.

 

주님이 계시다는 증거 찾기

연구에 따르면 우리 생각의 3분의 2는 부정적 생각과 걱정이라고 합니다. 제 자신을 돌아봐도 긍정적 생각을 하면서 걱정을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종종 마음속을 차지하는 부정적 생각과 걱정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정적 생각과 걱정은 불안을 가져오고, 이 불안이 생기면 늘 더 큰 불안이 다가오더라는 것이지요. 즉, 불안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힘이 더욱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에 무관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힘든 이 선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그래서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분임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주님께서는 함께 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과연 혼자서 그 모든 것들을 짊어질 수 있을까요?

주님이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분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다고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다면서 믿지 않는다고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주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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