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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3 조회수1,297 추천수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Great crowds came to him,
having with them the lame, the blind,
the deformed, the mute, and many others.
They placed them at his feet,
and he cured them.
(Lk.15,30)
 
 
제1독서 이사 25,6-10ㄱ
복음 루카 15,29-37
 

우리는 남을 돕는 일에 반드시 남아도는 돈이 있어야 한다거나, 돈이 그래도 조금은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도의 돈이 모여야 도울 수 있는 만큼이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애매해서일까요? 다른 이들을 돕는 데에 인색하기만 한 우리들입니다.

불교경전의 잡보장경(雜寶藏經)을 보면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가진 바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시(言施):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이다.

셋째는 심시(心施):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안시(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이다.

다섯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준다던지 일을 돕는 것이다.

여섯째는 상좌시(床座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어서 양보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사실 약간의 여윳돈으로 남을 돕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은 무재칠시를 실행했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무재칠시를 실행할 생각보다는 그저 물질적인 도움만이 진정한 도움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물질적 도움을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내세워서 돕는 것이 힘들다는 말만 외칠 따름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모습을 과연 원하실까요? 돈 많이 벌어서 다른 이들을 위해서 쓰는 우리들의 모습을 원해서 빨리 부자가 되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면서, 이 세상 안에서 부자의 길이 아닌 하느님께 인정받는 모습인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음식이 없어서 배고파하고 있는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면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물으셨고, 그들이 가지고 온 빵 일곱 개와 약간의 물고기로 배불리 먹이신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없어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지금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주님께서는 먼저 물으십니다. 이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불경에 나온 무재칠시만을 베풀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나머지를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받기만 하는 사람은 더 많이, 더 좋은 걸 받고 싶어 합니다. 반대로 주는 사람이 되면 작은 것을 베풀어도 즐겁습니다. 상대가 기뻐하면 기쁨이 더 커집니다. 주는 사람의 만족도가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소노 아야코).


무재칠시

 

더 중요한 것은 무엇?

지난 월요일에 동창 신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스마트폰을 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모두가 안경을 벗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노안이 온 것이지요.

솔직히 이제 노안이 온 동기들보다도 저는 몇 해 전에 이미 노안이 왔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다보니 일찌감치 노안이 왔나 봅니다. 요즘도 새벽 묵상 글과 강의 준비를 하면서 모니터를 계속 보니 점점 더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도 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새벽 묵상 글을 쓰는 새벽에만 컴퓨터를 켜기로 했고, 글을 쓸 때에도 연필을 이용해 종이에 적은 뒤에 나중에 컴퓨터로 옮깁니다.

요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멀리하다보니 책도 더 많이 읽게 되고, 글도 쓰게 됩니다. 그밖에도 해야 할 것들이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할 시간에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하는 데에 쏟고 있었던 것이지요.

편리함과 재미를 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면 과감하게 멀리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제 맛있는 것 먹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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