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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강론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4 조회수1,066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광야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하느님 말씀을 들었다고 나옵니다.
왜 복음을 쓴 작가가 광야라고 구체적으로 밝혔을까요?

광야는 사람이 살기에 아주 불편한 곳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는 ‘광야’ 였습니다.
유다인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헤매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하느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은 깨달은 곳이 광야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이 광야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들꿀을 먹으며 국민회개운동을 펼친 곳도 광야였고
예수님께서 사탄의 공격을 받았으나 하느님의 힘을 얻어 공생활의 터전을 마련하신 곳도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성서적으로 중요한 곳입니다.
광야는 고통의 장소이며 사람이 살기에 힘든 장소입니다.
일교차가 심하며 그늘조차 없고 물도 귀한 곳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이 광야입니다.

성인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장소가 광야이며 그 광야에 하느님의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수도원과 은수자가 있는 곳은 모두 광야에 있습니다.

광야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요즘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라 신앙인조차도 기도하지않고 주일을 철저히 지키지 않습니다.
현대 신앙인들은 불편한 것을 싫어하여
추우면 추워서 성당에 안 나오고
더우면 더워서 성당에 안 나오고
휴가 중에는 놀러가느라고 성당에 안 나오고
세상재미 다 보고 시간이 남으면 기도하는 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썩어 없어질 세상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 모두를 투자하면서
영원한 세상을 위해서는 내 모든 정성을 얼마나 바치고 있습니까?

옛날의 우리 선조들은 기도생활 철저히 했습니다.
주일을 빠진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불가에서도 1년에 몇 번씩 단식을 통해 자신의 몸을 정화합니다.

사람의 몸은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도 푹신한 곳에 앉고 싶으며~~
앉아 있으면 발랑 드러눕고 싶어지죠~~

드러누워서 묵주기도가 될까요?
물론...그런 것을 ‘발랑묵주기도’ 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께서
“마음은 행위의 원천이고, 행위는 마음의 반영이다.”
라고 하셨듯이~~

마음이 삐딱하면 몸도 삐딱해집니다.

요즘 짓는 성당을 보면 징궤 틀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2000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와서 성수를 찍으면서 반 장궤를 하고 무릎을 꿇으며
한 주일 동안 자기 생활을 반성해야 합니다.
성체성혈이 이루어질 때, 성체를 영할 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지금 성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요즘 짓는 성당은 단가가 비싸고 수십 억짜리를 짓지만 장궤틀을 놓지 않는 것을 보며....
이런 것도 교회에 퍼져 있는 어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몸이 무릎을 꿇으면 마음도 무릎을 굽힙니다.
사람의 두 손이 모아지면 마음도 모아집니다.
사람의 육신은 영혼에 큰 영향을 줍니다.

 


   2003년 대림 강론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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