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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4 조회수1,019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Then he touched their eyes and said,
“Let it be done for you according to your faith.”
And their eyes were opened.
(Mt.9,29-30)
 
 
제1독서 이사 29,17-24
복음 마태 9,27-31
 

어떤 청년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직장으로 향합니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2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전철로 이용해서 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아침식사를 거르기가 일쑤입니다. 더군다나 박봉이기에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이 월급으로 어떻게 돈을 모아 결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니 절망에 빠집니다. 이런 상태로 직장에서 기쁘게 일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이런 자신의 비참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너는 직장이라도 있잖아. 나는 매번 이력서를 내도 받아주는 회사가 없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랍니다. 내가 일할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안에서 내 꿈을 펼칠 수도 있는데,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다보니 가지고 있는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다보니 직장에서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열심히 업무를 하게 되었고 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지요. 이런 그를 보고 직장 상사에게 열심히 일을 한다고 칭찬받고,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평가했었고 그래서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고,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됨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절망을 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런 불행은 자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사람들, 즉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도 전달되어 불행의 모습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눈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표징을 직접 보았어도 믿지 않았습니다. 치유의 기적을 직접 보았지만 믿지 못해서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눈이 멀었지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나의 두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내 귀로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마음의 귀로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저 너머의 희망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믿음을 원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만을 믿음으로 내세웠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출생에 대해 그 사람보다 내가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이광호).


눈이 많이 왔습니다.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언젠가 어떤 부부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그이가 어제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는데 얼마나 코를 심하게 골고 또 이를 가는지 통 잠을 자지 못해서 지금 너무 피곤해요.”

그런데 이 말에 남편은 곧바로 반박을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물 좀 마시려고 중간에 깼는데, 당신 코까지 골면서 잘만 자던데?”

과연 아내는 잠을 잘 잔 것일까요? 아니면 아내의 말처럼 못 잔 것일까요? 남편이 보기에는 잘 잔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을 신경쓰다보니 사실은 밤을 꼬박 샌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은 것입니다.

불안, 부정적 생각이 자리를 잡으면 편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느끼는 감정은 평소의 편안할 때와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그런 감정을 거짓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서 생활한다면 과연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시며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오늘 강의하러 호주에 갑니다. 사진은 제가 갈 호주에 있는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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