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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측은지심의 하느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5 조회수742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측은지심의 하느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쉼터 몇 군데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고마운 은인 한분이 이사 간다며 건질 것 있으면 건져가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가서보니 정말 건질 것이 많았습니다. 책상과 의자, 응접세트, 각종 식기...닥치는 대로 실었습니다. 아이들 살 집이 착착 제 꼴을 갖춰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아이들 집은 도시 간선도로에서 IC를 타고 내려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습니다. 1톤 트럭에 짐을 가득 실었기에 아주 조심스럽게 IC를 타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관구장 신부님이었습니다. “네. 신부님. 하실 말씀 있으시다구요? 저녁 일곱 시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능수능란하게 한손으로 전화를 받고 다른 한손으로 멋지게 핸들을 돌리며 IC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꿈에도 생각 못한 경찰관 두 분이 저승사자처럼 IC 끝에 서계신 것입니다.


 

이미 눈이 정면으로 마주쳐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내리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에다 안전띠까지 안하셨네요. 면허증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설상가상으로 서둘러 나오느라 지갑까지 놔두고 와서 면허증도 없었습니다. 경찰관은 기가 차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범칙금 견적을 뽑고 계셨습니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 벌점 15점, 벌금 6만원, 안전띠 미착용 벌금 3만원, 면허증 미소지 벌금 3만원... 이거 대박인데 어쩌죠?”


 

그때였습니다. 운전석 옆자리에는 아이들 집에서 키우라고 선물로 주신 주먹 만한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있었습니다. 저와 상견례를 치룬지 몇 시간도 안 되었는데 그새 정이 들었는지 제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단속중인 경찰관을 향해 맹렬히 짖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러는 거 같았습니다. “왈왈, 이 아저씨 좋은 일 하는 사람이니 한번만 봐줘요. 한번 봐주라구요. 멍멍!” 경찰관 아저씨,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조용히 해, 너희 아빠가 잘못했으니 내가 차를 세운거야. 콩알 만 한 것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야! 그러고 보니 너도 안전띠 안했잖아?^^”


 

경찰관과 강아지 사이의 기가 막힌 대화를 듣는 제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과속하다 받은 벌점, 언젠가 불법 유턴하다가 받은 벌점이 쌓여 이번에 딱지 떼이면 면허정지까지 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더구나 그 돈이면 제 한 달 용돈인지라 저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제발 싼 걸로 끊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랬더니 그 경찰관 아저씨, 측은지심 가득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한참동안 쳐다보시더니, 얼마짜리 끊어주셨는지 아십니까? 당시 범칙금 중에 제일 싼 오토바이 헬멧 미착용, 만 원짜리로 끊어주셨습니다. 요즘도 가끔 트럭을 운전할 때 마다, 길에서 교통지도를 하고 계시는 경찰관들을 볼 때 마다 ‘만 원 짜리’ 경찰관 아저씨의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복음을 묵상하다보면 결론은 늘 한 가지입니다. 죄와 상처, 결핍 투성이인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측은지심으로 가득한 눈길, 한없는 부드러움, 자상함... 나이가 들수록 이런 측은지심의 하느님이 너무 좋습니다.


 

(양승국, ‘오 마이 파더 오마이 시스터’, 생활성서)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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