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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5 조회수1,051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Mt.9,37)

제1독서 이사 30,19-21.23-26
복음 마태 9,35―10,1.5ㄱ.6-8
 

저는 지금 호주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 처음으로 올리는 새벽 묵상 글이네요. 한국과 2시간의 시차가 있기도 하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고 또 오는 길에 식사까지 하느라 이제야 겨우 올립니다. 아무튼 가능하다면 계속해서 새벽 묵상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속도가 느려서..... 혹시 모르겠네요. 그럼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이제 2015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아쉬움 때문일까요? 그래서 12월을 1년 중에서 제일 추운 달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추울 때 솔로인 사람들은 “옆구리가 시리다.”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함께 있으면 서로 붙어 있을 수 있고, 상대방의 체온으로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긴 어느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은 사람이다. 그래서 추운 날 누군가를 안으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마음의 추위까지도 이겨내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랑의 힘은 이렇게 추위까지도 이겨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나를 안아 줄 누군가만을 원할 뿐, 내가 안아 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색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웃을 위한 따뜻한 옷이 되어주지 못하고, 나를 따뜻하게 해줄 옷만을 찾고 있다는 것이지요. 나만을 따뜻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늘다보니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영예를 가지고 있지요. 나를 안아줄 누군가를 찾지 못해서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점점 개인주의화되는 세상 안에서 누군가의 옷이 되어줄 사람들을 점점 더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한탄 섞인 말씀이 크게 와 닿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주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 수확하시려고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의 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수확할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만연한 세상입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터넷에 악성 글을 올려 아픔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손해를 보는 작은 것에도 큰 소리를 지르면서 공허한 정의를 외치는 세상입니다. 이 과정 안에서 사랑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을 수확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비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누는 쓸 때마다 녹아서 점점 작아집니다. 어느 순간에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비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점점 작아지면서 더러움을 없애주지요. 만일 비누가 녹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이런 비누는 아마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을 수확하는 일꾼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녹아서 작아지는 좋은 비누와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가장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됩니다.

큰 것을 바꾸기 위해 미루며 살기보다는 작은 것을 당장 바꾸며 살게나. 그리하면 올해는 반드시 어떤 소득이 있을 걸세(정채봉).


제가 탄 비행기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종종 코칭을 하면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았지만 곧바로 답변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나온 답변 역시 ‘행복’등의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일 때가 많습니다.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면 성취감을 느끼기가 힘들다고 하지요. 예를 들어,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고 합시다. 과연 어느 정도에 도달해야 목표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함을 느낀다면 이렇게 목표 설정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작고 소소한 목표를 갖는 것이 더욱 더 좋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루에 한 명이라도 좋은 말을 건네기, 착한 일을 하루에 3번 하기 등등.... 작고 소박한 목표지만 이를 완수하면서 분명히 큰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호주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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