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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06 조회수1,33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다해 대림 제2주일


< 하느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내렸다 
>


  
복음: 루카 3,1-6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

 

오늘 묵상은 평화방송에 나오는 강길웅 신부님의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강의의 최선을 다하자’(8-9)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강길웅 신부님은 본래 사제가 되려고 했지만 집 빚을 갚기 위해 우선 초등학교 교사를 12년간 하다가 늦게야 사제가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꿈은 다른 사제들보다 2배는 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품을 받기 전 가장 힘든 본당으로 보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당시 광주교구에서 나주군 노안이라는 곳에 옛날 본당이 있었는데 너무나 힘든 곳이어서 외국인 신부님이 사목을 하시다가 본국으로 갑자가 돌아가셔서 본당 사제가 없는 공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신부님은 부제 때 일 년 내내 그 본당으로 보내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보통은 새 신부를 그런 어려운 곳에 보내지 않는데 주교님께서 나이가 많은 강 신부님을 그 곳으로 발령을 내셨습니다. 강 신부님이 너무 기쁜 마음으로 그 본당에 갔는데 주일미사 100명도 안 나오던 성당이었는데 수백 명이 나와 있더라는 것입니다. 냉담자들이 이번에 한국인 신부님이 오시는데 자신들을 방문하여 끌려 나갈 것 같아서 자신들이 회의를 해서 자진해서 나오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방문하신 그때부터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옆 산에 없던 십자가가 생겼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신부님이 그 산에 올라가보니 돌무더기밖에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신부님이 부임할 당시 군대 산림과에서 그 산의 나무를 정리하였는데 그 덕에 산 중턱에 돌들이 보이기 시작하여 영락없는 십자가모양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이 그 성당에서 4년 반의 사목을 다 마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성당을 방문했을 때는 그 십자가가 사라졌는데 신자들은 신부님이 떠나셨을 때 사라졌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때 쳐 놓은 나뭇가지들이 다시 자라서 돌들을 덮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덕분으로 성당은 너무나 잘 돌아갔습니다. 처음 발령받고 갔을 때 총회장님이 신부님의 월급을 다 드릴 수 없을 정도로 본당 사정이 좋지 않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일 년 예산이 28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해 결산을 하고 보니 1200만원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재임기간 동안 집을 다섯 채 사고 논과 밭을 사서 폐교에 청소년 수련장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제 한 사람의 생활비도 안 나오는 성당에서 교구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수련장까지 짓게 된 것이었습니다. 부제 때부터 파견될 본당을 위해 일 년 동안 기도했기에 주님께서 냉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으시고 기이한 십자가까지 생기게 만들어서 신부님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무리 신부님을 도와주시고 싶으셔도 그 가난한 본당에 파견 받아 열심히 살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런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능력 있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그 능력을 필요로 할 만큼 일을 하기를 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컫는 서양 속담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탈렌트의 비유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왜 어떤 종에게는 다섯 탈렌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탈렌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탈렌트만을 주셨을까요? 각자가 주님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 마음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탈렌트만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냉정한 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이 일을 하여 그분을 더 큰 부자로 만들어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능력을 배가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그분을 위해 일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어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저를 늦게야 사제로 불러주실 때 저는 사제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때 성당 성모상이 성모님처럼 보이는 발현까지 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것은 내가 술을 마셨기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이지 진짜 성모님은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셨다고 해서 그 추운 겨울날 동상과 성모님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주님이 불러주신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은총도 그렇게 그 안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많은 능력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리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고 나옵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을 증언할 인물을 요한으로 삼으셨고 그에게만 말씀의 은혜를 내려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오직 요한만이 하느님을 위해 일할 준비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 많은 여인들 가운데서 오직 성모님에게만 성령을 통한 아드님의 잉태가 이루어졌을까요? 그것은 성모님께서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 하느님을 일을 할 충실한 종의 마음을 지닌 유일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은총을 내리십니다.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는 누군가가 준 대본대로 살아가는 배우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배역이 주어지는데 누구는 가난뱅이, 누구는 불구자, 누구는 지도자, 또는 평범한 시민 등으로 배역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할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역할을 맡던지 최대한 열심히 연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런던에서 노틀담의 꼽추란 뮤지컬을 본 적이 있습니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볼품없는 꼽추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괴물과 같은 모습의 꼽추. 그런데 그 역할을 얼마나 잘하는지 사람들은 그 꼽추의 노래와 연기에 눈물을 흘립니다. 나에게 맡겨진 배역이 아무리 천해보여도 최선을 다 해 연기하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역할은 없습니다.

존 헨리 뉴먼 추기경님은 이미 복자품을 받은 굉장히 훌륭한 분입니다. 그분이 처음에 성공회 신부님이었다고 45세 때 가톨릭 사제로 서품을 받고 추기경까지 오르신 분입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청소부라면 런던에서 제일가는 청소부가 되겠다.”

그런 정신으로 사셨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 그만한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원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역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맡은 역할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최고를 원한다면 최고가 될 능력을 주십니다.

오래 전에 어떤 큰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사장이 볼 때 아주 특출한 사원 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그 둘을 시험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엘리베이터 당번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니 사표를 던지고 나갔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맡은 일을 하였습니다. 세 달 뒤 사장이 그 사람을 불러 회사에 보고할 것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각 부서별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을 하며 그 문제의 해결책까지도 제시를 합니다. 하루 종일 승강기 안에 갇혀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대화를 수집하여 정리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회사에서 잘 안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장의 호의와 함께 더 큰 역할이 주어지고 더 큰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루르드 성모님 발현을 보았던 벨라뎃다 성녀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돌아가실 때는 매우 극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주위에 있는 수녀님들이 그 고통을 보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벨라뎃다 성녀는 걱정하는 수녀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은 고통을 참아 받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잘 참아 받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으로 이 세상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듯이 우리도 주님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능력을 잴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저들을 먹이기를 원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나머지는 열두 광주리가 남을 정도로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마음이 원하면 머리가 돕고, 손과 발이 협력합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큰마음을 가집시다. 그 마음이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주님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능력을 주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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