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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지에서 내리는 은총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강론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0 조회수1,313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알이 있는 둥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순교성월이기 때문에 특별히 배티성지의 영성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배티성지의 영성을 443성지라고 요약했습니다.

첫 번째 4는 배티성지에는 4가지 영성이 있다~

두 번째 4는 배티성지에는 4가지 은사가 있다~

세 번째 3은 배티성지에 다녀가는 순례자에게는 3가지 영적인 의무가 있다~

4가지 영성을 통해, 4가지 은사가 내리고, 3가지 의무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우리나라에서 약 2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생겼습니다.

그때는 천주교신자의 목숨까지 노렸기에 신자들은 재물, 논밭, 벼슬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깊은 산으로, 깊은 산으로…… 숨어들다가 짐승만 살 수 있는 이곳으로 모여듭니다.

이곳 배티는 차령산맥의 줄기로 충북, 경기, 충남, 3개도의 접경지입니다.

나물을 뜯고, 약초를 캐면서 처음에는 서로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어느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로 십자가 표시를 하자 서로 교우임을 확인합니다.

이렇게 배티를 중심으로 15개의 교우 촌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곳 배티는 조선에 있던 127개 교우 촌 가운데 가장 큰 교우 촌으로

동양의 까따콤바라고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차를 타고 쉽게 오셨을지 모르지만 이곳은 얼마나 깊은 산중인지 몰라요.

한밤중이면 산짐승이 울고, 눈이 쌓이면 멧돼지들이 떼로 몰려옵니다.

겨울에는 옥수수를 준비해 두었다가 그들에게 줍니다.

봄이면 사제관 유리창마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쳐서 보살펴주어야 해요.

우리 신앙 선조들은 짐승밖에 살 수 없는 이곳에서

세상 부귀영화 다 던지고 살다가 나중에는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버렸습니다.

뭘 지키려고 그랬을까요?

신앙,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세례 받을 때부터 제일 많이 듣는 단어가 뭐예요?

신앙, 다른 말로 믿음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막상 누가 믿음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따라하세요.

신앙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그러나 365, 24시간 여러분 안에 하느님이 첫째자리에 없습니다.

물론 있을 때도 있지요.

병들었을 때,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때는 평일미사, 구일기도, 성지 순례 다 하지만 그 고비 넘어가면

하느님은 다시 저 밑으로 떨어집니다.

 

저는 자매들에게는 남편이 첫째 자리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식 위해서는 기러기 엄마도, 노래방 도우미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남편은 저 아래 순위로 떨어져 있어요.

 

자식에게 축복 주시는 하느님을 홀대하면서 어찌 은총이 내리기를 바랍니까?

어찌 은총의 비가 거꾸로 올라가겠는가!

하느님이 첫째 자리에 좌정해 계실 때, 은총을 받습니다.

그 내용을 알지만 지키는 것은 사제도, 주교도 피나는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성지개발이다~ 피정이다~

하루 종일 입에 단내 나게 일하다 보면 파김치가 됩니다.

사제관에 들어가면 침대가 나를 보고 노래해요.

날 보러 오라고~

들어가면 안 돼, 오늘 못 다한 성무일도 해야지!’

어떨 때는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성무일도 끌어안고 잠들어 있어요.

오늘 7시간 피정 지도 했으니까…….

타협하면서 묵주기도 슬쩍 안 하면 지옥 가는 KTX 바로 타는 겁니다.

 

기도생활 안 하면 나도 모르게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우상이란 하느님 밀어내고 그 위에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생각 안하고 미운 놈만 하루 종일 생각한다면~

우리 성당 나만큼 똑똑한 사람 나와 보라 그래~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려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신자처럼

3가지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첫째, 수계생활을 철저, 10계명에 철저히 하는 겁니다.

 

십계명 중에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 그건 신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수계생활의 핵심은 적극적인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잘 했는지~

얼마나 적극적인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나누고 살았는지~

적극적인 선을 행해야 합니다.

 

보릿고개에 외인들은 굶어죽어도 교우 촌에는 음식이 남아돌았다고 합니다.

가진 것을 내어 놓아서 빵의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영적 훈련 두 번째,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 다른 말로 신공 놓으면 안 됩니다.

감옥에 있든, 병원에 있든, 기도와 멀어지면 시체와 같습니다.

기도 안하는 신자에게는 시체처럼 냄새가 나지만 본인만 그 냄새를 못 맡습니다.

 

영적훈련 세 번째, 아무리 환경이 열악해도 전교해야 합니다.

전교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예수님 유언 지키려고 저도 기를 쓰고 세상 끝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

60년 동안 천주교 신자로 살면서 몇 사람이나 전교시켰냐?’

게으름 때문에 단 한 사람도 전교하지 못하고 세례 시킨 사람이 없었다면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회장님께 4대 교리 배운 것이 전부이지만

수계생활 철저, 기도생활 철저, 세상 끝날 까지 전교하는 것을 목숨 바쳐 지켰습니다.

포도대장 앞에서 혀가 잘려도 그 피로 천주님이라고 쓰고

세상의 주인은 천주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세 가지 영적훈련으로 옹기장사를 하며 집집마다 다니며 전교를 했습니다.

 

배티 성지에는 군데군데 쉼터가 있습니다.

쉼터 이름을 용진골, 동골, 삼박골, 15개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최양업신부님은 조선 전체 127개의 교우 촌을 다니며 사목을 하셨습니다.

일 년에 7천 리길, 돌아가실 때까지 116개월 동안 무려 구만리 길을

짚신을 신고 밤에만 산길을 걸어다셨어요.

양들은 목자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습니다.

 

먼 곳에 계신 신부님을 뵈러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업고 밤새 걸어

고해성사, 병자성사, 마지막 노자성체까지 받게 하시고 신부님 품안에서 세상을 떠나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성당이 있고 신부님을 언제라도 뵐 수 있잖아요.

 

최양업신부님은 양들을 만나기 위해 잠을 포기하셨어요.

한 달에 3일 이상 자본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말씀 들을 때 잠마귀가 쳐들어오면 최양업신부님

생각하면서 참아내야 합니다.

 

2010 830, 이곳 배티에 왔어요. 5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감곡을 떠나기 싫었어요.

빚이 산더미처럼 쌓인 그곳에 가서 그것 해결하고 이제 좀 살만하다~ 했거든요.

저는 그곳을 동양의 루르드성지로 만들어서 서양의 신자들이

매괴 성지를 찾아오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교님의 뜻으로 이곳 배티로 오던 날, 허허벌판에 서서

왜 이곳이 죽어가는 곳인지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배티성지를 잘 몰라서 배론성지로 착각하기도 했어요.

또 배티는 가파른 곳에 있어 노인들을 갈 수 없다~ 라고도 했어요.

 

현대인들은 4가지를 갖추어야 옵니다.

먹을거리, 들을 거리, 쉴 거리, 볼 거리!

 

감곡에 있을 때는 저녁 해가 지평선 끝까지 떨어지면 불타는 노을이 가슴을 ~ 트이게 했거든요.

그때 제가 지은 시 , 노을 죽인다~’

그런 곳에 있다가 이곳에 와서 하늘을 보니 갑갑하기만 했지요.

감곡에서 진을 다 빼고 와서 아무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양업신부님이 스승에게 쓰신 편지를 읽었어요.

모두 21통의 편지 가운데 20통이 남아 있는데 그중 6번째 편지를 읽다가

주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뜻을 알게 되었어요.

, 조선에 이렇게 큰 신부가 계신 줄 몰랐구나!’

서양에 바오로 사도가 계신다면 동양에는 최양업신부님이 계셨구나!’

 

석 달 만에 정신을 차리고 최양업신부님이 시복이 되면 첫미사를 드리기 위한

카리스마 있는 대성당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다음에 최신부님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서 박물관을 지어서 작년 415일날 축성하였습니다.

바로 그분의 시복시성 위하여 이 힘없는 사제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성모님께 죽을힘을 다해 충성을 다하신 최양업, 그 사제를 위하여 너의 희생을 바쳐라!’

이곳에 온 지, 어언 5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분께서 시복만이 아니라 시성의 영광까지 한꺼번에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곳은 아홉 분의 복자가 있는 큰 성지입니다.

 

최신부님은 사제가 되고 116개월 만에 사목을 하시다가 장질부사에 걸려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다니시느라 쇠잔할대로 쇠잔한 몸에는 아무런 저항력도 없었습니다.

근방에 계셨던 파티에르신부님이 이미 뻣뻣해진 몸에 병자성사를 주신 다음 배론성지에다가 묻어드렸지요.

그래서 지금 그분의 무덤이 배론에 있습니다.

작년에 시복이 되셨으면 교회법 절차에 따라 유해 일부라도 배티에 모셨겠지요.

전 이미 그분의 무덤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최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를 간절히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한국 신부의 대가 이어지도록 신학생 세 분을 키우셨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가톨릭 대학의 문을 열었던 곳입니다.

지금 문화재 15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멀리 말레이시아 페낭이라는 곳으로 세 분을 유학까지 보내셨지만

불행히도 세 분 다 풍토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최신부님이 돌아가시고 한국에서 제일 큰 본당 역할을 했던

이곳이 1866년 병인박해 때, 장사꾼들에 의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발칵 뒤집히다시피 하여 15개 교우촌이 한밤중에 들이닥친 포졸들에 의해 발각되었습니다.

달도 없는 밤에 도망도 못 치고 잠자다가 아이들도 엄마 소리 한 번 못하고 몰살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청년 몇은 비밀통로로 도망치다 중간에 숨어있던 포졸들에게 도리깨로 맞아 죽었습니다.

시신은 산짐승이 내려와 뜯어먹고, 뼈만 남아 나뭇잎에 싸여 땅속으로 묻혔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무명순교자라고 부릅니다.

 

15개 교우촌마다 수많은 무명순교자들이 묻혔지요.

배티골 이곳에서만 14인의 무명순교자, 6인의 무명순교자 묘가 있습니다.

 

이곳은 천주교신자들의 비밀교우촌이 있던 곳이요, 최양업신부님의 땀과 신앙이 어려 있는 곳이요,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곳이요, 순교자의 본향인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배티 순교영성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여기를 찾아오는 순례객들에게 큰 힘을 실어줍니다.

 

순교성월 첫 토요일, 이 거룩한 땅, 주님의 방주에서 오늘 여러분에게 치유의 은혜가 내려갈 것을 믿습니다.

구마의 은혜를 통하여 어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믿습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믿음의 갑옷을 입혀서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내게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영적인 순교를 통하여 담대한 마음을 갖는 은총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배티 성지에서 미사 때 말씀을 통하여, 나중에 십자가 보목을 통하여 내리실 은총을 미리 당겨 감사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5년 9월 5일 배티은총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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