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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1 조회수1,087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9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meek
and humble of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selves.
(Mt.11,29)
 
 
제1독서 이사 40,25-31
복음 마태 11,28-30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쥐를 두 부류를 나누어서 실험을 했습니다. 한 그룹은 아주 이상적인 환경에서 살게 하고, 다른 그룹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게 하면서 편안한 생활이 생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어떤 그룹이 더 오래 살았을까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쥐들보다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편안히 사는 쥐들이 더 오래 살았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상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 쥐들이 먼저 생기를 잃고 병들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건강에 나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극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지요. 하긴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대는 사람보다 더 생기가 넘치고 건강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 아닙니까?

이상적인 환경만을 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약간의 고통과 시련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러한 고통과 시련에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을 때에는 편안하고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어렵고 힘들었을 때, 이 순간이 제발 빨리 지나갔으면 할 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움을 하소연할 때 등을 이겨냈을 때였습니다. 그 이겨냄의 순간에서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성장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주님께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올 때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멍에란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를 뜻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주인의 뜻에 제대로 따를 수 있으며, 주인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과 소에게 멍에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이지만 이 멍에 없이는 주인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시련 역시 하나의 멍에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멍에가 주님과 함께 하면서 유일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적당히 무거워 그것을 멘 이들에게 오히려 힘을 북돋아 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렵고 힘든 지금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당신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마크 트웨인).


호주의 블루마운틴. 유칼립투스 나무로 이루어진 해발 1100미터의 고원입니다.

 

행복이란?

세계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답했다고 하지요.

“내가 진정 행복했던 날은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질문은 듣지도, 보지도, 또 말하지도 못하는 3중장애를 안고 살았던 헬렌 켈러에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폴레옹과 달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행복하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객관적으로는 볼 때 누가 더 행복한 것 같습니까? 장애도 없었고 떵떵 거리며 세상을 호령했던 나폴레옹이 더 큰 행복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지만 실제는 행복한 날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던집니다. 하지만 ‘저런 상태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헬렌 켈러는 행복하지 않은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면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임을 세상에 알립니다.

세상의 기준이 결코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종종 깨닫게 됩니다. 이는 곧 남의 평가의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의 평가,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행복을 살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만족과 감사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이로써 진정한 행복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호주 블루마운틴 공원 안의 세자매봉(Three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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