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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1 조회수1,261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Amen, I say to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been n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Mt.11,11)
 
제1독서 이사 41,13-20
복음 마태 11,11-25
 
언젠가 운동을 한 뒤에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온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큰 소리로 울어대는 것입니다. 비누칠을 이제 막 했을 때였기 때문에 전화를 받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벨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화 좀 받으라고 제게 재촉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전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결국 비누가 묻어있는 상태로 거실에 나가 급하게 휴대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통화를 한 순간 실망하고 말았지요. 아리따운 목소리를 가진 안내원이 말하는 대출안내 전화였기 때문입니다.

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전화였던 것이지요. 그런데도 꼭 필요한 전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거실을 물바다로 만들면서 급히 받았습니다. 대출 받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절을 하고서 다시 욕실로 향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모든 것 다 팽개치면서까지 임하면서, ‘주님의 일에 대해서도 그런 자세로 임했었는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의 말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것까지 다 들으면서도, 주님의 말에 대해서는 얼마나 경청하고 있었을까요?

솔직히 급한 전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전화를 받지만, 위의 경우처럼 쓸데없는 전화일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매번 급하게 전화를 받았던 것은 혹시라도 있을 중요하고 급한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 한 번을 위해서 매번 놓치지 않고 전화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에 반해서 주님의 말씀은 매번 중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단 한 번만 잘 들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한 번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함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인간의 나약함으로 주님의 말씀을 모두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하늘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 때문에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의 모습이 변화되어야 할 때입니다. 언젠가 주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또 언젠가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다짐만 하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또 매 순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다짐뿐 아니라 행동하는 우리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영적 크기도 점점 주님께서 원하시는 크기로 변화될 것입니다.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은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행동들이 있을 뿐이다(복자 마더 데레사).


호주 시드니 주교좌 성당입니다.

 

보물과 지팡이

욕심이 너무 많은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 할아버지께서 우연히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동굴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굴은 잠시 동안만 문이 열렸다가 어느 순간에 문이 닫혀서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보물을 갖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굴을 힘들게 찾아가서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잠시 뒤에 동굴 문이 열리면서 그 안의 온갖 보물이 보입니다. 언제 닫힐지 모른다는 기억이 나서 얼른 들어가서 몇 개의 보물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동굴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보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여생을 떵떵 거리면서 잘 살 수 있겠다 싶었지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자신의 낡은 지팡이를 동굴 안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동굴 안에 들어가 지팡이를 집어 드는데, 바로 그 순간에 동굴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고, 결국 그 동굴 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동화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의 보물로도 충분한데 더 많은 보물을 차지하려는 우리의 욕심, 보물들로 인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은 버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놓지 않는 우리의 욕심.

동굴에 갇혀 버린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욕심에 갇혀서 주님과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많은 보물들, 그 소중한 보물들에 만족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 것’을 기쁘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선물을 통해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호주 시드니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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