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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1 조회수1,24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who sit in marketplaces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mourn.
(Mt.11,16-17)
 
 
제1독서 이사 48,17-19
복음 마태 11,16-19
 
어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들도 되뇌어 봅니다. 지구상에 60억의 인구가 있다고 하지요. 60억 중에서 만난 몇 명과의 인연이 정말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주에 오지 않았으면 평생가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분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요?

사제라는 저의 위치도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직업이라고 알려진 것만 만 천여 개라고 하는데, 그 만 천여 개의 직업 중에서도 ‘사제’로 살고 있다는 것 역시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지금 이 순간 역시 아주 특별하지요. 한국 사람이 한국에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저는 지금 한국에서 10시간 떨어진 호주에 특강을 하러 왔습니다. 이것 역시 어떻게 평범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놀랍고 신기할 뿐입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이라는 시간 자체 등등 하나하나가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종종 지금의 삶 자체를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고, 내 삶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특별한 일, 재미있고 신나는 일,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일만 생기기를 원하는 착각 속에 살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든 순간이 은총 속에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총 밖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반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장터에서 뛰어노는 아이에 대한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피리를 불어 주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장터의 철부지 아이들과 같다고 하시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특히 장터에서 뛰어 노는 것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아이는 어른의 행동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지요. 그래서 즐겁게 춤추라고 피리를 불어 주어도 딴 곳에 가서 놀 생각을 할 뿐 가만히 있습니다. 초상이 나서 슬픈 상황이지만 죽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저 친구들과 놀 생각만 하고 있어서 울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철부지 아이의 모습을 우리가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라는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들어도 별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도 별 반응 없이 세상일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말씀인 것이지요.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은 당연히 간직해야 하겠지만, 철부지처럼 주님의 뜻을 모르고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즉, 이제는 영적으로 성숙해서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은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 특별한 날, 특별한 일에만 있는 주님의 은총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의 은총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 날 해야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라(킹슬리).


어제는 맛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에 다녀왔습니다.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밀과 겉보리 씨앗을 뿌리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습니다. 과연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밀과 겉보리 씨앗은 일 년 중에 고작 봄에 한두 번 그리고 가을에만 뿌릴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아무리 뿌려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 때에 뿌리기는 했지만, 길바닥이나 돌밭에 뿌렸다면 어떨까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만큼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해야 할 때와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좋은 열매를 맺고 싶어 하는 욕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면서 주님을 원망하면서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아무 때나 뿌리는 자신의 착한 행실 하나로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배려했는데 내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품을 때도 있지 않았습니까? 씨앗이 뿌려지는 장소 역시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던 적은 없었을까요?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제 때에 그리고 제 장소에 씨앗을 뿌릴 수 있는 현명함과 성실함을 그리고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들판에 서 있는 멋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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