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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탄절을 기쁘게 /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2 조회수685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시기의 중간 시점에 다다른 지금, 가만히 돌이켜 보면 이리저리 바쁘게 보낸 시간이 더 많다. 할 일을 마치지 못한 채 한 해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마음에, 그리고 올해를 미리 마무리하는 수많은 모임에다 성탄 행사와 선물 준비가 더해져 차분한 분위기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조급하다. 그러다 보니 막상 성탄절이 눈앞이라도, 기쁘고 뿌듯한 마음보다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앞설 때가 많다.

 

따라서 이 대림에 안주하거나 집착하는 삶에서 벗어날 것을 깨우친다. 이 시기에 우리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모험’임이 각인된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베들레헴으로 가셔서 거기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시고 동방 박사가 별 따라 길 나섰듯이, 우리 또한 깊은 그리움과 희망을 간직한 채 주님 향한 길 떠남을 결심하게 되리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0-13).’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경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유다인들은 그를 모세와 동등한 서열에 둔다. 회교도들도 그를 진정한 예언자로 고백한다.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남긴 분이시다.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임금이었던 ‘아합’ 시절에 그는 등장했다. 당시 사회는 물질 숭배와 ‘바알 우상’에 빠져 있었다. 엘리야 예언자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제관들을 제거하며 하느님의 힘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승천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종말이 가까워지면 그가 다시 올 것이라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이 엘리야에 비유하신다. 당신의 오심을 준비했던 그에게 화려한 평가를 내리신 것이다. 누구에게나 엘리야는 있다. 바르게 살도록 이끌어주신 분들이니까. ‘삶의 마지막’을 묵상하게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엘리야’일 게다. 오늘은 그분들을 떠올리며 다시 또 ‘새롭게’ 삶을 시작해 봐야 하리라.

 

사는 것은 그야말로 잠깐이다. 고통스러웠던 것도, 힘들었던 시간도 사실 지나고 보면 빠르게 느껴진다. 언제나 함께 있을 것 같은 분들도 조용히 떠나갔다. 인생의 ‘종말’도 그렇게 소리 없이 찾아올 게다. 그런데도 우리는 ‘잊고’ 산다.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도록 애써야 하리라. 그것은 우리가 ‘엘리야의 모습’을 지니는 일이기도 할 터이니까.

 

위대한 이 뒤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다. 주인공을 돕는 조연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주연이 빛난다. 요한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다. 그러기에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마르 1,7)라고 외쳤다. 진정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일 게다. 이러니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분이었다. 그는 행복한 조연이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세례자 요한에게서 엘리야 예언자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다. 그는 엘리야 예언자처럼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여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제 대림 시기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매번 분주한 일상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대한 그리움과 희망으로 다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그것이야말로 성탄절을 기쁘게 맞이하는 데 필요한 가장 큰 준비일터이니까.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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