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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는 어떤 아들에 더 /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5 조회수784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살면서 대부분이 그래도 거짓말을 좀 한다. 선의의 거짓말도 물론 있으리라,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원래가 자기 방어 본능 때문일 게다. 거짓으로 불리한 책임을 피하고 현재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것이리라.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서, 아니면 상대방을 해롭게 해 어떤 이익을 추구하고자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거짓말을 많이 할까? 자신의 체면, 권위, 명예나 가진 기득권에 집착하는 부류일 게다. 이 말은 기득권을 가진 지도층에 있는 이가 소박하게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는 뜻도 될 게다. 예수님도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보다 세리나 창녀가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사회에서 멸시받는 세리나 창녀는 더 이상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삶은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고나 할까? 가진 것이 많아지고 신분이 올라갈수록 방어적 본능 때문에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모면하려는 것이니까. 스스로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는 욕구가 강할수록 거짓 행동을 하는 데 다소 익숙하다. 이게 버릇이 되면 내면이 자유롭지 못해 늘 불안하다. 말과 행동이 정녕 다르지 않게 살 때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롭다.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로 우리의 이중적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 주신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할 것을 당부하지만 큰아들은 거절하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바꾸고 간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가겠다고 해 놓고는 가지 않는다. 이 이중적인 마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 줄곧 문제가 되는 핵심 주제이다. 우리가 바르게 사는 것은 상반된 이 두 마음을 하나로 합해 선하게 가는 것이리라.

 

맏이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지만, 둘째는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따랐다. 예수님은 누가 더 순종하는 아들인지 질문하신다. 대답하는 그대들은 어느 쪽인지를 묻는 것이다. 가겠다는 말만 하고 ‘가지 않은 아들’은 누구의 모습일지! 바리사이, 소위 힘깨나 있는 이들이다. 무엇이든 “예!”하고는 적당히 대처하는 그런 이들은 오늘날에도 참 많다. 행동은 적고 요구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다.

 

일하러 가겠다고 하고서 가지 않은 둘째 아들보다는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가는 맏이가 아버지의 뜻을 정녕 더 받든 아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리라.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가겠다고 하고 또 스스로 일하러 갔다면 그 얼마나 더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이 되었을까? 예수님이야말로 그런 아드님일 대표적인 표본일 게다? 우리는 어떤 아들을 더 닮았을까? 맏아들, 둘째, 아니면 예수님? 이 대림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실 그분을 기리면서 스스로 물어볼 질문이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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