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6 조회수946 추천수15 반대(0)

서양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육체라는 옷을 입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원한 세상을 향해서 나가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은 이데아라고 합니다. 영원한 세상과 영원한 세상을 주관하는 분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연구했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제1원인이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은 가능하게 하는 가능태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가능태의 최종 원인이 있으며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파스칼은 또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의 심판과 축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그분의 심판과 축복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나의 기준대로 살다가, 하느님의 심판과 축복이 있다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하느님의 심판과 축복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과 기준에 따라서 살았는데 정말 하느님의 축복과 심판이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굳이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하느님의 축복과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사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배우지 않았던 사도들입니다.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고, 열혈당원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고,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교회의 순교자들 중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서 순교한 것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신분과 계급의 벽을 허물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님께서 바로 오시기로 하신 메시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표징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귀 먹은 자가 듣게 되고, 눈이 먼 자가 보게 되고,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갇힌 이에게 해방이 선포되고, 묶인 이는 자유를 얻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죽은 이들이 되 살아날 것입니다.’ 내가 보여주는 표징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그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도록 하십시오.”

 

어떤 이는 들의 꽃에서도, 하늘의 구름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고 합니다. 매일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날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한다면, 미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면, 가난한 이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이 바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이사야 예언자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비록 고난 중에 있었어도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 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 대림시기에는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 천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성모님에게도 나타나고, 요셉에게도 나타나고, 즈카리야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같은 운동경기라도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경기에 더 관심이 있듯이 저도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 성서 말씀을 들을 때 더 관심을 갖곤 합니다. 가브리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고 대천사라고 합니다. 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를 좋아합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 제가 있는 공동체, 또 제 자신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싶습니다. 저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전하는 지식과 지혜가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의 존재 자체가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쁜 소식은 어떤 일의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쁜 소식은 우리의 전 존재가 하느님을 닮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이 교차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나의 지식과 지혜가,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기쁜 소식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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