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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형제애로 모두가 하나 되기를 / 복음의 기쁨 100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7 조회수606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사이에 싸움은 안 된다.’라며, 종교 간의 여러 갈등을 포함하여 인류를 분열시키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신다. 세상은 싸움과 폭력으로 찢기면서 형제애의 이상을 분열시키고 서로를 적대시하려고 만연한 개인주의로 상처를 입는다. 여기저기 과거의 반목과 잊고픈 조짐이 또다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복음 곳곳에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래서 신앙인은 다른 이를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무척 많이 가진다. 그러나 실상 용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며, 그저 막연하게 용서하려다가는 자칫 자신의 마음에 상처 입기 쉽다. 따라서 용서가 무엇인지를 이해를 한 다음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상대방이 나에게 입힌 상처가 너무 클 때 용서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 어렵다면 우선 내가 입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들여다봐야 할 게다. 상처가 깊고 크다면 그 상처가 아무는 시간 즉,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는 시간을 자신에게 충분히 줘야 하리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주 심한 아픔을 주는 경우는, 그 아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잊어야할 나름의 시간’을 줘야만 한다.

 

오랜 분열로 상처받은 이들은 용서와 화해로 이끄는 우리의 초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기억과 이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용서하려면 우선 자신을 잘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부터 살아야 할 게다. 기도를 많이 해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은 기도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도 내용에 자신에 대한 용서를 청하지 않아서이다. 상대를 용서하기 전에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다른 이에 대해 용서하는 것이 더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화해를 이룬 형제애적인 공동체의 증언을 보면 그들은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임을 느끼리라. 일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심지어 봉헌된 이들조차 온갖 형태의 적대심, 분열, 비방, 모략, 중상, 복수, 질투, 그리고 자기들 생각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심어 주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실제로 마녀사냥처럼 보이는 탄압마저 용인하는 것을 볼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언제나 가슴이 미어진단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복음화 하겠다는 것일까?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과 평화의 추구는커녕 싸움질만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교회의 사목 일꾼들이 겪는 여러 유혹 중에 세속의 고질적인 암투로 복음을 빙자해 교회를 장악하려는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난다. 그 후유증으로 각종 신심단체가 해체되기가 일쑤이다. 예수님의 우리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그 간절한 기도가 무색할 만큼 싸움질이다. 형제애의 이상을 빼앗기지 말자.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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