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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7 조회수995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17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Jacob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Of her was born Jesus who is called the Christ.
(Mt.1,16)
 
 
제1독서 창세 49,1-2.8-10
복음 마태 1,1-17
 
지금의 어려움과 힘듦에 대해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면서 왜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는 무시하시냐는 투정 섞인 말씀을 하시는 한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주변에는 주님의 은총을 받으신 분들이 너무나 많은데, 자신만을 외면하신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우리의 기도 하나하나에 다 응답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신다면 이야 정말로 좋겠지요. 하지만 은총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았을 때가 은총이 아닙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96에서는 은총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자녀, 입양 자녀, 신성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도움이지만 여기에 조건이 하나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이라는 전제 조건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삶을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호의와 도움이라는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았을 때가 은총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사랑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주어지는 그 모든 것들이 은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은총 속에 살고 있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역사 전체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은총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의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복음은 그 시작에 맞춰서 마태오 복음의 첫 장인 예수님의 족보를 보여주지요. 솔직히 족보 하면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면서 그냥 건너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역사 안에서 계속되었던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큰 굴곡들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예수님까지 이어집니다.

국가라는 틀 없이 떠돌이 유목민의 생활을 할 때에도 그리고 왕이 생긴 후 끊임없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에 빠지는 일탈의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에도 하느님의 은총은 계속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느님의 은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죄로 물들어 있는 이 세상 모두의 구원을 위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가장 큰 은총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은총은 역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과 같이 계속해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총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르심에 잘 응답하도록 무상의 호의와 도움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게오르크 헤겔).


어제 대림특강을 했던 풍무동 성당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한 10년 전 쯤 되었을 것입니다.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한 가지 의혹이 등장했었지요. 부부가 21년간 주민등록상 다른 주소지를 써온, '주민등록상 별거상태'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동산 투기 때문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한 국회의원이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한 해명이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글쎄 이 부부가 결혼할 당시 유명한 무속인이 “외동딸이 출가해서 주소를 옮길 경우 처가에 화가 올 수 있다.”면서 주소 분리를 권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법조인으로 검찰총장까지 되었던 이 분은 분명히 많이 배웠고 또한 힘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법(주민등록법)을 어기면서까지 무속인의 말을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많은 부와 화려한 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은 약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무속인들처럼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면서 일일이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해서 어떤 것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다른 어려움이 와도 별 문제없이 이겨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굳은 마음을 주시는 은총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풍무동성당의 멋진 야외 대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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