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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8 조회수992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


 

젊은 사제 시절이었습니다. 애매한 좁은 삼거리에서 서로가 주저주저하다가 정면충돌을 하게 되었습니다. 속도가 낮은 상태라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보험회사를 불러보니 견적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결론은 두 차 다 폐차장 행이었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길에서 티격태격하던 중에 지나가던 순찰차가 다가왔습니다. 할 수 없이 경찰서에 가서 경위서를 쓰고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그 승용차는 당시 저희 공동체 안에서 유일한 승용차였습니다. 수도원 정문을 통과하는데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오후에 외출할 때는 분명 승용차를 타고 나갔는데 밤늦게 들어올 때 걸어서 들어오니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장신부님 얼굴 뵙기가 참 민망했습니다. 솔직히 겁도 많이 났습니다. 공동체 안에 유일한 승용차인데, 대형 사고를 쳐서 폐차까지 했으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 신부님께서는 그 늦은 시간까지 현관 입구에서 안절부절 하시며 기다리고 계셨는데, 제가 들어가자마자 먼저 건넨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아십니까?


 

“꼴좋다! 그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그 차가 어떤 차인데, 그걸 폐차시키고 와? 정말 어이없네!”


 

그러실 줄 알았는데, 하시는 말씀, 활짝 웃으시면서 “그래, 얼마나 놀랐고 또 고생이 많았어? 어디 다친 데는 없지? 그까짓 차 한 대 새로 사면 되니 아무 걱정 말게. 다친데 없다니 천만 다행이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아직 저녁도 못 먹었을텐데.”


 

주방으로 들어가신 원장 신부님께서는 손수 라면 두 개를 끓여주셨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는데도 그 순간이 잘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저 같았으면 일단 혼부터 내고 라면을 끓여주든지 했을 텐데... 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시고 저만 멀쩡하면 됐다는 그 말씀이 평생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최선을 다해 안전운전 해야겠다고.


 

자비의 해를 맞이하면서, 그리고 대림시기를 마무리하면서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에 대해서 자주 묵상합니다. 언젠가 분명히 우리 모두 자비하신 하느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될 텐데...그분의 얼굴은 아마 제게 라면을 끓여주신 그 원장 신부님의 얼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잔뜩 두려워서 겁먹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나 잘못 실수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장점, 긍정적인 측면, 작은 사랑의 행위,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번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그 일들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원장 신부님이 제게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영원한 천상식탁에 앉히실 것입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와 실수에 대해서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하는 것도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동적 의미 소극적 의미에서의 회개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 참된 의미에서의 회개는 하느님이 너무 좋아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극진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한도 끝도 없어서 기뻐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발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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