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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슴묵상] 대림시기 고민 한 가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19 조회수1,073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시기 고민 한 가지

 


지난여름 형제들과의 단체휴가 때 피정 집에서 가까운 갯바위로 낚시를 갔습니다. 제 일천한 경험상 ‘낚시는 무슨 낚시? 그저 바닷바람 좀 쐬고 오는 거지!’하고 마음을 비우고 가면 엄청난 조과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엄청난 기대를 하고 가면, 특히 회칼이나 도마, 냄비며 매운탕꺼리 해서 잔뜩 이고지고 갔을때 제대로 한번 낚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아니나 다를까 정말이지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한 여름 땡볕에 고생도고생도 그런 쌩고생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아닌가 하고 도구를 챙겨서 돌아오려는데 제 낚싯대 끝을 미세하게 흔드는 입질이 왔습니다.


 

머릿속으로 엄청난 대어를 꿈꾸며 재빨리 챔 질을 했더니...결과는 웃기게 생긴 복어새끼였습니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재수 없기로 유명한 새끼손가락만한 복어였습니다. 속상하는 마음을 달래며 녀석을 멀리 던져주려다가 제 손바닥 위에 잠깐 올려놔봤습니다.


 

그랬더니 녀석이 엄청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기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스스로 자신의 배를 엄청 빵빵하게 부풀리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연출한 녀석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나 무서운 고기이니 함부로 건들지 마라는 위협이었습니다. 나 그리 손쉬운 고기 아니니 조심하라는 경고였습니다. 새끼손가락만 녀석이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나 웃겼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녀석을 보면서 두렵기는커녕 웃음이 나와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 우리 역시 하느님 앞에 그런 웃기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 존재 역시 때로 웃깁니다. 자기 스스로 엄청난 과대포장을 하고 멋진 명함을 뿌리고 다니면서 ‘내가 누군지 알아?’하고 외치지만 뒤로 돌아서면 어떻습니까? 너무 외롭고 허전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존재입니다. 지난 자신의 이력을 줄줄이 나열하면서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만 사실 하느님 앞에 별 영양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금쪽같은 대림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되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우리를 잔뜩 둘러싸고 있는 과대포장이나 조잡한 덧칠을 벗겨내는 시기가 아닐까요? 이 시기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시기가 아닐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기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근본적으로 측은한 존재요 나약한 존재란 사실을 인식하는 시기, 그래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결핍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시기,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돌아갈 곳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품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시기 말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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