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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기 예수로 오시는 그 날을 위해 /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1 조회수616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즈카르야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웃들은 아기에게 어떤 이름이 주어질지 관심이 많았다. 아이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받자 두려움에 휩싸인다. 요한의 탄생이 회개로 이끌어, 주저앉아 있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었다면, 이제 죽을 운명의 인간을 살리신 주님의 탄생이 곧 이어질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대부분이 처음 묻는 말이 있다. “아기가 누굴 닮았어? 엄마야, 아빠야?” 그런데 요한이 태어나자 사람들은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고 말한다(루카 1,66 참조). “누굴 닮았어?”라는 질문은 과거의 일이고, “이 아기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래의 것이다.

 

요한은 앞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될 게다. 요한은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증언할 것이다. 그리고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주님께 세례를 줄 것이며, 불의를 일삼는 권력자의 폭력으로 죽게 되리라. 이렇게 요한은 서서히 작아짐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될 것이다.

 

‘유다 산악 지방’으로 엘리사벳을 찾아가시는 성모님, 더 정확히는 그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다가가시고, 그에게 이제 때가 가까이 왔다고 이르신다. 태중의 아기는 요한이 선포해야 할 그분이 바로 눈앞에 계심을 알게 하시고, 그가 태중에서 뛰놀게 하신다. 그곳에서의 두 여인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위로하는 가운데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자신들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를 나누었으리라.

 

둘의 만남은 태중에 잉태된 메시아와 그 선구자와의 첫 번째 만남이다. 엘리사벳과 그의 태중의 선구자 요한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반면, 마리아와 그분 태중에 잉태된 아기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대표한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복되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였고, 태중의 요한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엘리사벳의 감사에 넘친 감탄은, 주님의 탄생이 인류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다림의 결실이며 그 탄생으로 평화와 구원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고백이다.

 

이렇게 두 여인은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되었다. 사촌 간의 우애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두 여인은 유다 산골에서 서로 용기를 주며 구세사의 꿈을 키워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가까이 오시어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신다. 세례자 요한이 그분을 알아 뵙고 태중에서 뛰놀았듯 연인의 목소리에 가슴이 떨리는 마음으로 화답할 때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취하시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께서 장차 겪으실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잘 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려고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 성탄은 아이들 생일을 축하하듯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 모든 결과를 감수하시며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게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우리 구원을 위하여 늘 준비하시고 마련하신다. 그분 구원의 때가 다가온다. 차분히 아기 예수로 오시는 그 날을 위해 자신을 가다듬자. 마지막 대림의 이 시기에 더욱 더 차분히.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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