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강론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1 조회수638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상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만나십니다.

좀 이상한 것은 ‘나병환자가 어떻게 마을까지 내려왔을까?’

 

그 시절 문둥병에 걸리면 자기 아버지라도 산 속에 버렸습니다.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고 나병환자라고 측은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저 인간이 얼마나 모질게 살았으면…… 아마 조상 가운데 모질게 산 놈이 있으니까

그 자손도 문둥병 환자겠지~’

 

나병환자는 동네 한가운데 나타났다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죽더라도 항의조차 못 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나병환자가 먼저 소리칩니다.

“나, 나병환자요, 피해가시오.”

 

오늘 마을까지 나병환자가 나온 것은 짐작하건대 나병환자들이 동굴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누군가 “우리 마을에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예수님이 오신답니다.” 하는 소리를 엿들었을 겁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어도, 손도 없고 발가락도 없는 몸으로 어찌 갈까?

설령 간다고 해도 맞아 죽을 텐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얼굴을 헝겊으로 감싸고,

모습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을로 내려갔을 겁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대화하는 중에 나병환자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나병환자의 모습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나병환자는 확신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굴속에서 죽으나, 사람들에게 맞아죽으나 마찬가지…….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돌을 던져도 예수님만은 받아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앙과 확신은 라틴어로 같은 뜻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천주교신자들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형식으로 흐를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내 영과 육이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내 영과 육이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체를 영할 때마다, 내 영과 육이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할 때마다, 내 죄가 아무리 진홍색처럼 붉어도

주님이 나를 치유시켜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100% 믿었습니다.

두 번째, 나병 환자에게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겸손함만이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기도 역시 겸손의 기도가 될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계획합니다.

하느님께 맡겨놓은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급할 때는 달라고 합니다.

협박성 기도할 때 많습니다.

지가 다 만들어 놓고 기도 들어갑니다.

겸손한 기도를 할 때, 성부와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청원의 기도 하셨지만, 언제나 마지막에는

‘제 뜻대로 마시고 하느님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하셨습니다.

협박하는 기도는 응답을 못 받습니다.

 

오늘 이 나병환자는 절박한 상황이지만 겸손하게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나병환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존경의 표시로 먼저 무릎을 꿇습니다.

 

피조물이 하느님께 경배하는 첫 번째 행위는 먼저 무릎을 꿇는 겁니다.

육의 무릎이 꿇어졌다고 영의 무릎이 꿇어진 건 아닐 겁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꿇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첫 번째, 확신 두 번째, 겸손 세 번째, 존경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응답하십니다.

첫 번째, 불쌍한 마음으로 손을 대시며 터치 테라피를 하십니다.

‘깨끗하게 되어라!’

 

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낫게 해 주셨을까?

나병환자들은 가족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배반당한 배신감, 분노, 미움이 쌓여 있습니다.

육신의 병이 치유된다고 영의 병도 함께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들에게 받았던 모멸감을 먼저 치유시켜 주십니다.

이 세상 누구도 만져주지 않았던 몸에 먼저 손을 대십니다.

 

여러분 주변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영혼이 혹시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섬세하게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스케일은 바다처럼 크지만 사람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섬세하게 사람을 못 대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치유시킨 다음에 두 가지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첫 번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는 함구령!

두 번째 ‘봉헌하라’ 는 봉헌령!

‘네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을 사제에게 보이고 모세가 정해준 대로 봉헌해라!’

 

왜 함구령을 내리셨을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 로마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아로 선동이 되기 쉬웠지요.

은총 받은 자의 첫 번째는 침묵입니다.

 

많은 경우는 은총을 시궁창에 떨어뜨립니다.

성지순례 때 받은 은총을 입을 통해 잃어버립니다.

눈물 펑펑 흘리고 피정 받은 후에 입을 통해 받은 은혜 다 날려버립니다.

은총을 받은 직후는 침묵입니다.

 

"그래도 주님께 받은 영광 간증해야 되지 않을까요??"

다 때가 있습니다.

 

축복받은 자의 두 번째는 봉헌입니다.

내가 축복 받을 때마다 얼마나 봉헌하셨습니까?

지난 일 년 동안 감사예물 얼마나 드렸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은 예수님 말씀대로 봉헌해야 합니다.

봉헌가지 이르러야 그 은총은 완성됩니다.

 

봉헌은 감사의 예물일수도, 육체의 봉사일수도, 재능의 봉사일수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 신자들은 예수님 가르치신 두 가지, 침묵도 안 지키고,

봉헌도 안 지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과 등을 돌리고 간 뒤에는 이 은총을 다 잊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서 엄청난 것도 아니고... 다만

‘함구하고, 봉헌하라’

그 두 단어뿐인데도 우리들은 못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짧은 다섯줄이지만 우리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 알려줍니다.

확신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가라!

 

세 번째는 전교하는 마음으로 영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썩어문드러진 영혼에 측은한 마음으로

‘마리아야, 루시아야, 베드로야, 나오너라.... 너에게 평화를 주겠다!’

손을 대실 겁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마귀가 시샘하지 않게 침묵하면서 성서를 읽고, 봉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백번 말해야 소용없습니다.

표현을 해야 합니다.

과일도 익으면 빨갛게 표현합니다.

 

이 세상 피조물가운데 가장 하느님께 인색한 것이 사람입니다.

다 자기가 잘 나서, 자기기도 덕에 자식이 잘 된지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심장이라고 내 능력으로 뛰는 것 아닙니다.

내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침묵하면서 하느님께 어떤 봉헌을 해야 할지 늘 묵상해야 합니다.

 

열병에서 나은 베드로의 장모가 일어나자마자 후들거리는 다리로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듯이~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주님의 말씀, 마음에 새깁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5. 02.15 연중 제 6주일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