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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표현되기를 갈망하신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8 조회수1,05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1227/주일복음말씀묵상(제2독서)/주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표현되기를 갈망하신다!(콜로3,12-21)

 

 

콜로3,12-4,6절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의 생활 문제를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15장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을 떠나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느님의 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콜로새서에 계시된 만유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성도의 생활은 반드시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에서 반드시 그분과 하나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콜로3,12절은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믿는 이들을 하느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도 부른다. 새 사람은 하느님이 뽑으시고, 하느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나아가 새 사람은 거룩하다. 이것은 새 사람이 평범하지 않고 세상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하느님께 분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새 사람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이다.

 

우리는 그러한 새 사람으로서 필요한 모든 영적인 덕목들, 곧 동정(긍휼), 호의(친절), 겸손, 온유, 인내를 옷 입을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것은 신약에서의 명령문 내지 권유문(do)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행함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으로 인한, 성령과 더불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행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는 자신의 결심과 노력에 의한 행함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감화에 힘입은 자연적인 연합된 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3,13절은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용서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 영 안에 살고 계신다. 용서는 그분의 생명의 한 덕목이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으로 인해 살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자연스러운 덕목일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부여받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3,14절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4,16). 사랑은 하느님 자신의 본질, 곧 하느님의 생명의 실체이다! 따라서 사랑으로 옷 입는 것은 하느님의 생명의 요소를 옷 입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이 완전함과 성숙한 덕목들을 갖춘 매는 띠이다.

 

바오로는 모든 죄의 근원을 탐심으로(5),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근간을 사랑으로 대조함으로써 이원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이 구조는 의복과 같아서(9-10), 결코 입지도, 벗지도 않는 중간 상태에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묵시3,15). 곧 성도의 생활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생활이어야 하며 이에서 벗어나면 모두 마귀의 뒤를 좇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3,15절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이 문제는 콜로새서의 배경과 관련지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 사람 안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다인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의 철학이나 유다의 규례를 교회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

 

새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만이 만유이고 또한 만유 안에 계신다! 더 나아가 새 사람의 하나, 곧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 안에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로 하여금 우리 마음 안에서 중재하시도록 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안에 중재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가?

콜로새서를 영으로 읽고 또 읽고 묵상해 보라! 이 책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내적 중재자라는 것을 분명히 볼게 될 것이다! 이 중재자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도록 허락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자신들의 마음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화를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더 가깝게 나아가면 갈수록 믿는 형제들 사이의 관계도 더 가까워진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 속에 평화,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추월적인 평화가 지배해야만 한다. 바오로가 언급한 여러 덕목들로 옷 입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3,12, 14) 모든 환경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평화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옷 입어야 할 삶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기 속에 풍성히 거하시게 하는 삶이다.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다(요한6,63).” 곧 믿는 자들은 성경 말씀, 곧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기도와 영으로 읽고 마음속에 간직해야만 한다.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여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되면, 이 말씀은 살아있어 우리의 혼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히브4,12)!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믿는 이들의 본성의 한 부분이 되면 마음의 감사(문자적으로는 은총 속에서의 뜻이다)를 가지고 시(시편의 노래들)와 찬미가(그 밖의 다른 찬양의 노래들)와 영가(세속적인 노래들에 반대되는 것들)를 자연스럽게 매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영가는 성령 충만할 때 자신도 모르게 내 영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초월적인 그분을 향한 영적인 노래로, 그 감미롭고 사랑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잠자면서도 계속 영가를 부른다! 알렐루야.

이러한 기쁨이 넘치는 찬양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를 가지고 분별있게 이루어진다면 이와 같은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하여(에페5,18-19)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체험해 보라! 알렐루야!

 

17절은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거룩하면서도 동시에 세속적인 영이란 있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신 주권자이시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왜냐하면 무엇을 하든지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을 힘입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

 

15-17절 이 세절 속에서 바오로는 세 차례나 감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5)”,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16)”,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17)”라고 말한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감사함은 성령 충만의 표현이다! 성령 충만한 삶은 감사로 표현된다! 알렐루야!

 

18-21절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1,28)이란 콜로새서의 주제에 비추어 바오로는 믿는 자들의 사적인 가정생활에 있어서 성숙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18-19절은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라도 말한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될 이유는 첫째는 창조의 질서(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고 여자가 그 후에 창조되었다. (1디모2,13))이고, 둘째는 신성의 질서(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신다(1코린11,3))이다. 여기서 순종이란 열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순종은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부부란 하느님이 서로에게 맡긴 소중한 인격체이다. 믿는 자에게 서로의 만남은 우연이란 없다. 주님이 짝 지워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하여 그분을 매개로 서로를 섬겨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마치 부드럽고 민감한 꽃처럼(1베드3,7) 아내는 권위적인 지배 아래서는 시들고 말지만, 부드러운 사랑을 받으면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결혼에 있어서는 남편은 아내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의 사랑 깃든 인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에 대하여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아내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할 것이다.

 

20-21절은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은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하느님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고 무서운 벌을 줄 것을 정하고 있다(탈출21,17; 레위20,9).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다. 순종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가정의 질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오로는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다(에페6,4). 부모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결국 이 말씀에 머물며 지난날을 눈물로서 후회하곤 한다! 책망하는 것보다 사랑의 훈련과 함께(히브12,7) 잘 한 것에 대해 칭찬해 주는 것이 최상의 양육임을 깨닫는다(에페6,4). 자식을 키우면서그러나 그것을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장애자 아들을 둔 나에게는 회한이 많다! 부족한 아이일지라도 사랑받고 사랑할 권리가 있다. 나는 이 아이를 통하여 많은 과정을 통과하면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을 만났다! 나는 지금 이 아이와 이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할

장애자의 집 거지 라자로의 집을 꿈꾸며 기도하고 있다! 알렐루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가 인간 생활을 통하여 표현되기를 갈망하신다. 콜로새서에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함으로써 그분을 머리고 붙잡고 생명으로 받아들여, 타고난 생명이 아닌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가장 높은 윤리적인 관계가, 그분의 표현을 위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산다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성을 통하여 표현될 것이다!

 

주 예수님, 나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사시옵소서!” 알렐루야! 아멘

 

<본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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