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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9 조회수1,13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2월 28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A voice was heard in Ramah,
sobbing and loud lamentation;
Rachel weeping for her children,
and she would not be consoled, 
since they were no more.
(Mt.2,18)
 
 
제1독서 1요한 1,5―2,2
복음 마태 2,13-18
 
살다 보면 왜 의로운 사람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주님의 조치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주님의 외면과 침묵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되지요. 그때는 기도도 되지 않습니다. 자신은 1년 내내 기도해도 일이 안 풀리는데 전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은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지요.

언젠가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터널 속이 어둡다고 절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터널의 끝이 올 것이고, 이 어두움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겪는 고통의 순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두움의 고통이 계속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밝은 빛이 비추는 평화와 기쁨도 분명히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지요.

분명히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굳은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밝은 빛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미래를 예견한 악마는 그분께서 아기일 때부터도 그분을 없애고자 필사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사랑하는 주님께서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지요. 그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아직 힘없는 아기일 때 없애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시켜 이집트로 피신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 안에서 커다란 희생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학살당한 아기들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채 꽃도 피우지 못한 아기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억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억울함과 슬픔은 계속해서 지금을 살고 있는 세상 안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억울함과 슬픔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그래서 그 뜻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힘차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오면 금방 불평하고 주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집니다. 여기에 고통이 더 심해지면 받은 은총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면서 감사한 마음을 물론이고 부족한 믿음마저 흔들립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주님의 선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통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 풀 수 없는 문제에만 매달리면서 할 수 있는 것, 또 해야 하는 것들을 내팽개친다면 어떨까요? 어두운 터널 속을 벗어나서 터널 밖의 밝은 세상을 지향하며 산다면 분명히 주님의 뜻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할 것. 아무리 나약한 인간이나 초라하고 불쌍한 인간도 사랑할 것. 그리고 그들을 심판하지 말 것(생텍쥐페리).


죄 없는 아기순교자들....

 

내 마음의 안경을 깨끗이

신부가 되고 얼마 후에 동기 신부들과 여행을 함께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승합차를 빌려서 모두가 함께 떠난 여행이었지요. 신나게 떠들면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두 명이 차 안에 앉아 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동창신부가 다급한 소리로 이렇게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

“라이트 켜.”

무슨 일인가 하고 깜짝 놀라서 다들 잠에서 깨었지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소리를 친 동창은 운전 보조석에 앉아 있었는데, 잠깐 졸았나 봅니다. 그리고 살짝 눈을 떠 보니 너무나 캄캄해서 차가 터널 안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라이트를 켜지 않은 것 같아서 다급하게 라이트를 켜라고 외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터널 속을 지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벌건 대낮이었는데 라이트를 켜라고 외치니 무슨 소리인가 동창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요. 이 보조석에 앉아 있던 동창신부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저분한 안경을 쓰면 당연히 깨끗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깨끗하게 해야 깨끗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더 많아지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의 마음에 씌고 있는 안경을 닦지 않으면서, 남에게 안경을 깨끗하게 닦으라고만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남을 탓하고 판단하기에 앞서서 내 마음의 안경을 먼저 깨끗이 닦았으면 합니다. 흐릿한 세상이 아니라, 맑고 선명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헤로데를 피해 피신하신 성가정. 이집트로 가기 위해 이런 사막을 건너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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