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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06 조회수1,043 추천수11 반대(0)

학교 다닐 때의 기억입니다. 반 대항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친구들 중의 한명은 앞으로 나서서 응원을 주도합니다. 박수를 유도하고, 춤을 추고, 현란한 몸동작으로 반의 응원 열기를 한껏 드높입니다. 소풍 때도 그렇습니다. 보물찾기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모이면 장기자랑이 있기 마련입니다.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줄반장도 못해보았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울렁증같은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저에게 두려움을 없애 주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생물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의 이름을 자주 불러 주셨고, 책을 읽으라고 하기도 하셨고, 칠판에 적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제가 생물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과목에서 인정을 받으니, 다른 과목들도 조금씩 자신이 생겼습니다. 저를 둘러싼 울렁증도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소풍 때,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자신 있게 강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중학생 때의 체험이 있기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진화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몸은 두려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압도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 사나운 동물, 독이 있는 벌레,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식물, 추위, 배고픔, , 폭력,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피하기 위해서 인간은 두려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인간의 지혜와 협력으로 하나둘씩 해결되어 왔습니다. 지금, 진화의 피라미드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걱정, 근심, 불안, 초초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未得先愁失(미득선수실) 當歡己作悲(당환기작비)’ 근심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기쁜 마음이 벌써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몸을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이것은 뉴턴의 물리학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빛이 상황에 따라서 파동과 입자로 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내가 걱정, 근심, 두려움,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차면 내 몸도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체격을 가졌어도, 많은 배움이 있어도 그것들은 무기력하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 희망, 믿음, 온유함과 친절로 가득차면 나의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많은 배움이 없어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분명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빵공장을 세우고, 수상 스키를 타라는 뜻은 아닙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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