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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신부의 희망 한 스푼]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06 조회수1,324 추천수16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양승국 신부의 희망 한 스푼-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바다를 좋아하다보니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고초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부들을 힘겹게 하는 몇 가지 자연현상들이 있더군요.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짙은 안개, 강한 맞바람, 그리고 심한 조류 현상입니다.


 

가끔씩 짙은 안개나 해무가 끼는 날이 있는데...몇 미터 앞도 잘 안 보이는 그런 날은 아예 조업을 안 나가는 게 상책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암초에 부딪치거나 길을 잃기 십상이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운항을 할 때에는 속도를 최소한으로 낮추거나 자주 뱃고동을 울려야 합니다.


 

안개 못지않게 위험한 요소가 강한 맞바람입니다. 특별히 갈릴래아 호수 주변의 기류는 변화무쌍했습니다. 헤르몬 산에서 내려오는 찬 기류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기류가 갈릴래아 호수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높은 파도가 일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릴래아 호수라고 하지 않고 바다라고까지 칭할 정도였습니다.


 

안개 못지않게 위험한 요소가 조류 현상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서해안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조류가 세기나 조수간만의 차가 높기로 유명합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서해안에 조류를 이용한 조력발전소까지 건설될 정도입니다. 조류가 심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생각과는 반대로 먼 바다로 떠내려갈 뿐입니다.


 

언젠가 형제들과 의기투합해서 어설프기 짝이 없는 뗏목 하나를 만들어 바다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물살이 멈추는 정조 상태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갑자기 썰물이 시작되면서 저희가 탄 뗏목이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육지는 점점 까마득해지고 저희는 점점 큰 바다로 흘러가 몇 시간 동안이나 표류를 계속했습니다. 이러다 죽는가보다는 생각과 함께 점점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순간 작은 어선 한척이 저희를 발견했습니다.


 

구릿빛 젊은 선장은 우선 저희를 안심시키더군요. “이젠 됐슈. 아무 걱정들 마유.” 그러면서 작은 어선의 꼬리에 저희가 탄 뗏목을 묶어 안전하게 항구에 내려줬습니다. 그 젊은 선장의 모습이 얼마나 고맙고 멋있던지 마치 예수님을 뵙는 듯 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비슷한 체험을 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던 중에 강한 맞바람을 만납니다. 하필 날까지 저물어 칠흑 같은 어둠속에 죽을 고생을 다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새벽녘까지 노를 저었지만 배는 언제나 그 자리였습니다. 전문직 어부 출신인 제자들이었지만 탈진한 상태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그 순간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혼비백산해서 비명까지 질러댔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제자들의 배 위로 예수님께서 올라가십니다. 제자들을 향해 건네시는 한 말씀은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코 복음 6장 50절)


 

참으로 위엄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으로 당신의 메시아성을 백성들 앞에 확연히 드러내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물위를 걸으심으로써 당신의 초인간적 위대성, 당신의 신적 본질의 신비를 드러내는 현현(顯現)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이 순간 인생의 고해(苦海)을 건너가고 있는 우리 각자에게도 동일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갖은 우여곡절과 역풍 속을 헤쳐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옛날 제자들을 안심시켰듯이 우리의 마음도 안심시킵니다.


 

인간, 근본적으로 나약한 존재입니다. 쉼 없이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주님, 저희의 마음은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되었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 편할 날이 없습니다.”


 

결국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근심하지 않기 위해서 정답은 하나 뿐입니다. 하느님의 품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선장인 교회란 배에 승선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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