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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07 조회수1,544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7일 주님 공현 후 목요일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la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liberty to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proclaim a year acceptable to the Lord.
(Lk.4,18-19)
 
 
제1독서 1요한 4,19―5,4
복음 루카 4,14-22ㄱ
 
언젠가 식당에 갔다가 이런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뒤뚱거리면서 걷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나 봅니다. 너무나도 자그마한 아이가 쓰러질 듯 말 듯 하면서 걷는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다 큰 성인이 그렇게 걷는다면 어떨까요? 그때도 사랑스럽게 보일까요? 아마 조금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넘어지는 것이 어쩌면 작은 실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실패를 그 누구도 손가락질을 하고 질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많이 넘어지는 실패를 겪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른 역시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자주 잊는 것 같습니다. 실패를 많이 겪어야 그만큼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음에도, 어른의 실패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이 실패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지요. 그러다보니 절망에 슬피 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기에게 대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어떨까요? 내가 관심을 갖고 보호할 대상이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다툼과 분열은 사라지고 분명히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랑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면서 이것을 내걸더군요.

“무조건”

아기에게 조건을 바라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도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단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인간들이 배반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음으로 몰고 가도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고 무조건 사랑하시겠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을 우리 역시 간직해야 합니다. 사랑에는 ‘무조건’이라는 조건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말로만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닮은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요한 사도의 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19-21)

인간은 분수와 같다. 분자는 자신의 실제이며 분모는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분모가 클수록 분자는 작아진다(레프 톨스토이).


무지개가 뜬 갈릴래아 호수.

 

실패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나 유명한 사람들의 강연을 보면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의 실패를 자주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 순간을 이겨내니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 실패가 과연 자랑스러웠을까요? 나 이렇게 실패했다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던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그 순간이 오히려 어느 날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은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실패를 모든 것이 끝난 좌절과 절망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사람들 앞에 자랑스럽게 말할 이야기 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어떨까요? 오늘도 또 하나의 이야기 거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실패를 무서워 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실패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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