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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축복의 첫 아침에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1 조회수1,386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축복의 첫 아침에


 

수도원이 문을 두드리는 수도자들로 넘쳐날 때였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니 당연히 의식주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가문에서 곱게 자란 한 신입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견디겠는데...공동침실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좁은 침실 안에는 일곱 개나 되는 야전 침대를 따닥따닥 붙여놓았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젊은 수도자들은 머리를 눕히기 무섭게 코를 골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침실이 처음이던 이 신입 수도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코골이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마치 칼을 가는듯한 코골이, 조금 잠잠해지면 이번에는 지축을 울리는 것 같은 장중한 코골이...참다못해 그는 새벽미사가 끝나자마자 백발이 성성한 원장 신부님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원장 신부님, 아무리 청빈도 중요하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방에 일곱 명이 뭡니까?”


 

한참 동안 말없이 젊은 수도자를 바라보시던 노(老) 사제는 자기한테 아주 좋은 해결책이 한 가지 있다고 하셨습니다. 딱 일주일만 취침시간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 자보라고 했습니다. 젊은 수도자는 그게 무슨 묘안이냐며 화를 냈지만 원장 신부님께서는 거듭 내 말만 믿고 일주일을 한번 같이 지내보라,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대화를 나누자고 말했습니다.


 

일주일 뒤 찾아온 젊은 수도자는 다크 서클이 완연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원장 신부님, 정말 너무 하시군요. 사람 골병들게 하시려고 작정하셨군요. 권고하신대로 밤마다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침실로 들여놓았더니 밤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볼일을 보니, 냄새는 진동하지, 겨우 잠들만 하면 ‘매애~’하고 울어대지, 정말이지 이러다가 제명대로 못살 것 같습니다. 제발 염소 저거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러자 원장신부님이 다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럼 오늘 밤부터 당장 그 염소를 침실 밖으로 몰아내고 잠을 자십시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합시다.


 

일주일 뒤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은 젊은 수도자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 신부님, 지금 저희는 너무 행복합니다. 밤이 너무 평화롭고 쾌적합니다. 침실에 더 이상 염소는 없고 오직 저희 일곱 명 뿐입니다.”


 

행복이라는 것, 만족이라는 것은 참으로 상대적입니다.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만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마음 먹기 따라 달렸습니다. 이왕이면 큰 마음, 너그러운 마음, 관대한 마음으로 이 한해란 선물의 포장지를 뜯어 가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했던 성탄시기가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연중 제 1주간 월요일 아침입니다. 부활 시기나 성탄 시기처럼 대단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연중시기도 나름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연중시기는 다른 특별한 전례시기의 배경이자 근간이 되는 기간입니다. 연중시기가 있기 때문에 사순?부활 시기가 빛을 발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새롭게 맞이한 이 연중시기의 첫 아침을 어떤 태도로 맞이해야할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감사해야하지 않을까요? 별것 없는 것 같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은 특별한 은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묵은 것이 새것과 화해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절망이 희망과 다시금 손을 잡는 날입니다. 오늘은 고통이 축복으로 변화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고통과 상처, 그러나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봉헌물로 받으시는군요. 그리고 은혜롭게도 우리 앞에 또 다시 빈 들판 같은 희망만으로 가득 찬 새로운 연중시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하면서, 찬미하면서, 용기를 낼 순간입니다. 부족했던 우리의 지난날들, 이제 하느님께서 모두 거두어가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다시 새로운 연중시기란 과분한 은총 앞에 서있습니다. 정녕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아침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가장 큰 표시인 은총의 아침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새롭게 주어진 이 한해는 하느님께서 아직 우리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시고 다시 한 번 부르셨다는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이 ‘하루’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 다시 눈뜬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이 연중시기의 첫날,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처럼 기쁜 마음으로,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주님과 함께 힘찬 항해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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