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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당신은 한 성령의 두 방면을 깨닫고 있는가?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1 조회수928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6110/주일복음말씀묵상/ 당신은 한 성령의 두 방면을 깨닫고 있는가? (루카3,15-16, 21-22)

 

<오늘 본문에서 암시하는 한 성령의 두 방면(3,21-22), 곧 생명을 위한 내적 방면과 사역과 능력과 증거를 위한 외적 방면을 아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오랫동안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삼십 년 동안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왜 그분 위에 또 성령께서 내려오실 필요가 있었는지 그 이유를, 내가 만족할만한 가르침이나 해석집을 만나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그분 안에 이미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확실히 그분은 그분의 내부에 이미 본질적으로 성령을 소유하고 계셨다. 그렇다면 왜 또 성령이 그분 위에 내려오셨는가? 오직 하나의 성령이 있을 뿐인데(에페4,4), 어떻게 이 하나의 성령이 예수님께 내주하기도 하고 그분 위에 내려올 수도 있었는가? 나는 이 부분들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읽고 묵상하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보내어야만 했다! 알렐루야!> 


 

루카3,15그때에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끼친 깊은 인상 때문에 그가 메시야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요한1,8, 19-23)이 제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 초대교회 시대에 도처에 심지어 세례자 공동체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사도18,25; 19,1-7).


3,16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요한은 장차오시는 분을 심판자로 선포했으며, 그분의세례를 종말의 심판과 하나로 바라보았다.


16절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장차오실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물은 회개하는 사람들을 끝내기 위한 죽음과 장사지냄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령은 끝낸 사람들의 싹틈을 위한 생명과 부활의 영이다. 전자는 회개의 사역의 상징이었으며, 후자는 예수님의 생명의 사역의 상징이다. 요한은 회개하는 사람들을 죽음, 곧 물속으로 장사지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은 성령 안에서 그들의 거듭남을 위해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며, 믿는 이들을 그 안으로 세례 받게 하는 그 죽음, 곧 물(로마6,3)은 단지 잠기는 사람만을 장사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들과 세상과 그들의 과거 생활과 역사(歷史)까지 장사지내며, 마치 홍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바로와 애굽 군대를 장사지냈듯이(탈출14,26-28; 1코린10,2), 또한 홍수가 노아와 그의 가족을 세상에서 분리시켰듯이(1베드3,20-21), 하느님을 저버리는 세상과 그 타락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켰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믿는 이들을 그 안으로 세례 주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느님의 영이다(로마8,9).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세례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 받는 것이고(갈라3,27; 로마6,3), 삼위일체 하느님 안으로 세례 받는 것이며(마태28,19), 그 한 영 안에서 그리스도께 연결된(1코린6,17)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세례 받는 것이다(1코린12,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왕국 안으로 거듭나게 되고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통치(요한3,3,5)의 영역 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그러한 물 안에서의 세례와 영 안에서의 세례를 통해서이며, 그들이 그분의 영원한 왕국(kingdom) 안에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는 것도 이를 통해서이다. “성령과 불로 에서은 사도2,3절의 성령에 관련된 불이 아니라, 오히려 요한묵시록20,15절의 불 못의 불이다. 요한의 세례는 단지 사람들을 회개케 하여 주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안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주님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이거나 불의 영원한 멸망을 위한 것이다.


3,21-22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성육신으로 우리를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셨듯이, 그분은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와 연합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받도록 죄인들과의 연대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잉태 안에 있는 성령의 신성한 요소의 본질은 불변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의 위에서 내려오는외적인 성령은 예수님의 능력 있는 공생애를 위한 것으로,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셨을 때(마태27,46),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시고 그분을 떠나셨던 것은 이위에서 내려오는 외적인경륜적인 면에서였다. 곧 능력의 성령이 그분 위에 내려오고 계신 동안에도, 그분은 내적인 본질의 성령과 함께 더불어 존재하고 계셨다.

 

(1) 마태1,20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말한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본질적인 방면의 체험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분 안의 성분은 완전히 성령의 성분이다.

(2)그러나 마태3,16에서 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잉태될 때 그분은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어 성령의 성분으로 충만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 받으실 때 그분 위에서부터 성령이 임했다. 그로부터 예수님은 공생활의 능력 있는 사역을 시작하실 수 있었다!

 

한 성령의 두 방면은 레위2,1-6의 소제와 관련된다. 소제의 기록을 보면 고운가루는 변함이 없지만 기름에 두 방면의 적용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반죽되는 것과 부어지는 것이다. 반죽되는 것은 내적인 것을 의미하고 위에 부어지는 것은 외적인 면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기름에 적용된 두 방면의 예표, 곧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의 예표를 볼 수 있다.

 

또한 제자들 역시 두 방면의 체험을 가졌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호흡을 불어넣으셨다(요한20,22). 이 때 제자들은 내적인 방면의 성령을 체험했으며, 오순절 날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을 위로부터 부었을 때 외적인 방면의 성령을 체험했다.


(1) 한 성령의 두 가지 방면 중에서 내적인 방면은 성도들이 거듭날 때, 우리 영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곧 거듭남(중생)은 하느님과 분리되어 있던 우리 속사람()이 하느님과의 생명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요한17,3). 이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 육신의 가족을 잘 아는 것처럼 우리 영이 거듭남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알게 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게 하신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8,16절에서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 부모를 알고 믿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하느님을 알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의 내적 부분은 우리 영속에 역사하시는 생명적 역사이다!

성령의 기름부음과 인치심은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성숙하여 마침내 우리의 몸이 완전히 구속될 때까지 하느님의 성분을 우리에게 스며들게 하고, 하느님의 성분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과 인치심은 곧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과 하느님의 표현이 되게 하신다!(갈라5,22-23)


(2) 위에서 부어지는 성령의 외적인 방면, 사도행전1,8절에서 주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능력(권능)을 받는 것은 아버지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4),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세례이다(5). 우리 위에 성령이 임하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요한14,17)과는 다르다!


요한20,22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 성령은 본질적으로 믿는 이들에게 생명의 영이 되시기 위하여 그들 안으로 호흡되셨다! 그러나 오순절 날, 같은 성령이 경륜적으로 능력의 영이 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생명의 영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호흡이신 그분을 호흡해야 한다. 그러나 능력의 영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제복이신 그분을 입어야 한다.

이것들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한 영의 두 방면이다(1코린12,13).


생명의 영이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생활을 위한 본질적인 것이고, 외적인 능력의 영의 쏟아 부음은 우리의 사역과 일을 위한 능력이다! 그러나 외적인 성령의 체험이 없이는 우리는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루카24,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말씀하셨다.

 

외적인 능력은 원수를 대적할 때 필요한 무기이다! 마태12,28절에서 예수님은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성령이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고치시고 말씀하시기를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마르9,29). 오순절 이후에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이름으로 꾸짖기만 해도 귀신이 떠나가고 병들이 치유되었다!


주께서 우리를 축복하셔서 이 두 방면에 치우침이 없이 합당한 체험으로 인도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특별히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는 강한 바람, 곧 성령의 외적인 체험이 중요하다! 많은 믿는 이들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외적인 체험(이것을 성령 세례라고 한다)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체험으로는 그것은 주로 삶의 고난 가운데 체험하는 특별한 은사로, 우리의 영적인 진보를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는 외적인 성령의 체험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교회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오늘날의 교회는 신약성경의 기준에 따르려고 하지 않고 있으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 주님! 사랑합니다!

! 주님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알렐루야! 아멘


<이의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매일복음묵상편의 한 성령의 내적 및 외적인 두 방면(1),(2),(3)을 필독서하시기를! 하느님께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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