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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2 조회수1,088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Jesus rebuked him and said,
“Quiet! Come out of him!”
The unclean spirit convulsed him
and with a loud cry came out of him.
(Mk.1,25-26)
 
 
제1독서 1사무 1,9-20
복음 마르 1,21ㄴ-28
 
어제 드디어 갑곶순교성지로 제 둥지를 옮겼습니다. 2006년에 갑곶순교성지 초대신부로서의 소명을 마치고 본당신부와 성소국장 그리고 안식년 1년을 보낸 뒤에, 다시 10년 만에 갑곶순교성지에 온 것입니다. 10년 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에 어색함도 많이 갖게 되지만, 마치 고향에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설렘도 함께 합니다. 그만큼 갑곶순교성지는 제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는 곳이지요.

아무튼 어제 저녁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뒤에 커피 한 잔을 끓여서 마셨습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는데, 뜨거운 커피 잔을 놓았던 자리에 한동안 하얀 김이 서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한참을 하얀 김이 서려 있는 자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얀 김이 생기지가 않더군요. 커피가 다 식었기 때문이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사랑도 이렇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이 뜨거우면 그 자리에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이 뜨겁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입으로 사랑을 크게 말한다고 해도 아무런 감동과 느낌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10년 전, 갑곶순교성지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던 것은 당시에 참으로 큰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자국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또 다시 찾은 성지여도 여전히 설렘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뜨거워서 우리의 마음에 큰 자국을 남겨주십니다. 그에 반해서 우리의 사랑은 어떠했을까요?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을 사랑하기 위해 주님께 계속해서 청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이 고백에 기뻐하실까요? 아니면 화를 내실까요? 이 고백을 싫어하실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했던 이 고백에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꾸짖으십니다.

분명히 악마는 그리스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악마의 고백에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지요. 베드로 역시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비슷한 고백을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칭찬과 함께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주셨습니다.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차이 때문입니다. 즉, 베드로는 사랑으로 고백했고, 악마는 두려움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더러운 입에서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악마에게 침묵을 명령하시지요.

우리의 마음 안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외치는 형식적인 사랑의 고백이라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침묵을 명령하실 것입니다.

내 사랑의 온도를 높여야 할 때입니다. 그럴수록 주님은 더욱 더 가까운 분이 되며, 주님과 함께 하면서 참된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 텅 빈 공간만을 발견할 것입니다(앨런 코헨).


아직도 정리할 것이 너무 많아요. 이사는 정말 힘들어요.

 

하느님의 사랑

“음식은 먹을 수 있게 된 하느님의 사랑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메모해 놓은 구절입니다(솔직히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마치 누군가가 제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은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이 안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맛있다, 맛없다 정도의 느낌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분은 음식은 ‘먹을 수 있게 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단언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을 말해 준다는 것이지요. 이는 곧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의식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매 순간 하느님을 의식할 수 있고,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온 마음으로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기도해보았으면 합니다.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깨달으면서 내가 살아있는 존재의 이유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갑곶성지의 성모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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