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5 조회수891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3-5)’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관계적 존재이다. 그래서 다른 이의 마음과 하나가 되려할 때 조금씩 자란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주위의 작은 도움으로 큰 힘을 얻는다.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수많은 이가 모여들었다. 그때 네 사람이 중풍환자를 데리고 왔다. 너무 많은 이가 모였기에 그분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붕을 벗기고 그를 내려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신다. 마치 기러기들이 하늘을 날아갈 때 서로 격려하고 어려울 때에 함께하듯이.

 

사실 가을 하늘을 떼 지어 나는 기러기들의 모양은 대개가 삼각형이다. 혼자 나는 것보다 삼각형이 공기 저항을 덜 받는다나. 또 상승 기류로 그리 힘을 덜 드리고 더 난단다. 더군다나 맨 앞의 새는 공기저항에 쉽게 지쳐 시간을 두고 다른 새와 자리를 바꾼다. 그리고 그들은 가면서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는 서로 격려하며 특히 맨 앞 새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라나. 물론 힘이 떨어져 처지는 새에게는 반드시 동료 두 마리가 함께 내려와 몸이 회복되도록 도와주고 기운이 회복되면 다시 전 대열에 합류한단다. 이렇게 기러기는 협동심이 강하고 우애가 매우 돈독한 새다.

 

중풍 병자를 들것으로 데려온 이들, 그들이 그 환자의 친척인지 이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지붕을 뚫고라도 그 고통 받는 이를 예수님께 데려오는 믿음과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도 비록 남의 건물을 파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고통 가운데 있는 이를 도울 줄 아는 이런 작은 향기들을 삶 속에서 내고 살아야 할 게다.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의 치유는 병자 스스로는 얻을 수 없었던 은총이었다. 그를 도우려는 그 이웃이 없었다면 아마도 치유 받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진정한 치유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 이들은 어쩌면 그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보다 더욱 본질적이기에.’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데려온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셨다. 네 사람의 정성스런 믿음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가 온전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잘나서 용서받고 의인처럼 사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부단한 ‘기도와 노력’을 했던 것일 게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사제가 로마 시내에서 허름한 한 거지를 만났다. 알고 보니 거지는 자신과 같은 날 사제가 된 신학교 동료였는데, 그가 성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신부님은 다음 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알현하게 되었을 때, 친구 거지의 상황을 전했단다. 교황님은 그 거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식사가 끝날 때 두 분만 남게 되자 교황님은 그에게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청하였다. 거지는 환속한 자신은 더 이상 사제가 아니라고 말하자 교황님이 대답하였다. “나는 로마의 주교입니다. 이제 잃어버린 당신의 사제 권한을 다시 수여합니다.” 그는 교황님께 고해성사를 주었고, 그 역시 교황님께 고해성사를 청했단다.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리라.

 

교황님은 회개한 그를 그 거리의 걸인들을 돌보는 일을 주셨다. 그가 죄를 용서받기까지 스스로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을 게다. 오직 동료 사제와 교황님의 도움만이 있었을 따름이리라.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런 주위의 선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시어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하셨다. 마치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갔던 네 사람의 정성스러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그가 온전하게 되살아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자신이 잘나서 용서받고 의인처럼 사는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부단한 기도와 노력을 하기에 그러리라.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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