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6 조회수1,139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Why does he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Jesus heard this and said to them,
“Those who are well do not need a physician,
but the sick do.
I did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Mk.2,16-17)
 
 
제1독서 1사무 9,1-4.17-19; 10,1
복음 마르 2,13-17
 
몇 년 전에 다녀온 성지순례가 생각납니다. 여러 명의 교우들과 함께 예수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지요. 그런데 순례 중에 한 자매님께서 호텔 문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신 것입니다. 솔직히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뼈에 문제가 있다면 전혀 움직이지 못할 텐데, 힘들기는 해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을 호소하셨고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판단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한 형제님께서 다가오셔서 다리를 보시고 이리저리 만져보십니다. 그리고는 골절이니까 빨리 병원으로 모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 형제님께서는 의사 선생님이셨습니다. 전혀 티를 내지 않아서 몰랐지만, 아픈 환자를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서 검진을 해주신 것이었지요.

이 형제님 덕분에 얼른 병원으로 옮겨서 골절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만약 이 형제님이 없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갖 민간요법이 다 등장했을 테고, 그 결과 치료가 늦어져서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등장으로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형제님께서는 병원 일을 떠나서 온전히 순례에 집중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아픈 환자를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 의사 선생님께 순례에나 집중할 것이지 왜 환자에게 다가간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의사가 병자들에게 다가갔다 하여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진정한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죄로 아파하는 죄인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빠져서 참 진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당연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 역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기에 주님의 치유를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지요. 어쩌면 쓰려져서 병원에 실려 왔음에도 자기는 건강하다고 주장하면서 의사를 비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 역시 이 모습을 취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잘잘못을 떠나서 분명히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위선에 빠져있을 확률이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사람이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것처럼,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스스로 죄인임을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치유자이신 주님을 반대하고 떠나서는 안 됩니다.

당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당신은 용서한다는 것의 행복감을 알게 될 것이다(톨스토이).


갑곶성지 성당의 제대.

 

제대로 봐야 합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농장에서 가난한 청년 한 명을 고용했습니다. 청년은 아주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집안도 좋지 않고 가진 것도 없었기에 주인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직원으로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얼마 후, 이 청년이 자기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감히 내 딸을 사랑 하냐면서 화를 내며 농장에서 내쫓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농장 주인은 농장을 정리하다가 전에 자기 딸과 사귀었던 청년이 남겨놓은 노트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 노트에는 청년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지요. 그의 이름은 ‘제임스 에이 가필드’로 당시 미 합중국의 대통령인 것입니다.

농장주인은 장래 대통령이 될 청년을 몰라본 것이지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지금 한 순간의 겉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마치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주님의 뜻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섣부른 인간적인 판단이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하고 이해하는 주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후회할 것들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갑곶성지 성당 입구의 성상.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