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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 부대에 담을 때에야 참 기쁨을 /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8 조회수660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19-22)’

 

‘경주용 말’을 비행기로 실어 다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비행 내내 적정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고, 바닥에는 배설물 흡수제가 깔렸다나. 말들에게 쾌적한 비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으리라. 비용이 꽤 들었을 게다. 경주용 말들은 이렇듯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혹사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 말들은 옆에서 지키지 않으면 무한정 먹는단다. 배가 터질 때까지. 그것은 그 무서운 채찍에 ‘뛰고 또 뛰어야’ 하기에. 그래서 먹는 것으로 해소하려 든다나. 그렇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엄청난 무게로 시달리기에 마부는 일정 이상 못 먹도록 엄격히 그 량을 관리한단다. 결승점에서는 화려한 환호지만 이렇듯 비참한 구석이 있다.

 

예로부터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했다. 하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단식은 수단이요 은총을 얻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라고 하신다. 단식은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란다. 바리사이들은 단식 자체를 맹종하고 강요했지만 예수님은 아니라신다. 사랑을 위한 믿음이어야지 고통을 위한 믿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리라. 신앙인들은 경주용 말이 아니기에.

 

이처럼 율법과 관습은 때로는 날카롭게 충돌할 수 있고, 이는 각 개인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당장은 피하고 싶은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새로운 삶의 길을 두려움 없이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참된 자세일 것이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것은 정녕 무엇을 의미할까?

 

해외 연수나 유학 시절에는 마음고생이 많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는 반드시 현지 언어와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익혀야 하기에. 지금껏 삶의 방식에서 낯설고 불편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새로움이란 대개 이렇게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니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으려면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에서만 가능하리라. 그러나 흔히 받아들이려 하기보다 삶의 테두리에서 배제해 버리기가 쉽다. 그래서 가끔은 수박 바깥의‘ 무늬와 크기’에만 그치는 게 허다할 게다.

 

우리에게 육체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신적인 수련을 통해 이겨 나가고, 반대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는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좋다. 가령 우울증이라든가, 여러 가지 정신적인 복잡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정신적인 방법으로 풀려고 것 보다, 육체적인 활동이나 수련으로 오히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 예가 있다. 예컨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나에게 불편한 이가 있다고 보자. 그들을 내 삶에서 배제한다면, 그것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지 못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매일 새롭게 살려는 노력이 있으면 바로 그러한 이들에게서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처음 대하게 되는 이였던 거다.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에게서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꼈고, 시기와 미움이 치솟아났다.

 

만약 그들이 느낀 그 불편함을 이겨 내고 자신들을 새롭게 했다면 그분에게서 나오는 새로운 그 무엇을 끝내 맛볼 수 있었으리라. 사랑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때문에 겪는 그 고통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을 안은 게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은 나와 결국은 그를 묶는 거다. 지금 나는 내 삶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돌이켜보자.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참 기쁨을 느낀다면 그건 성숙한 신앙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새 부대에 담을 궁리를 새로이 해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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