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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카나의 혼인잔치의 표징!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18 조회수1,50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6117/주일복음말씀묵상/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카나의 혼인잔치의 표징! (요한2,1-11)


요한복음에서 소개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는 사복음서 가운데 오로지 요한복음에만 있다. 요한은 특별히 표징’(세메이온, 11)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사한 기적들과는 다른 차원, 곧 그 기적이 의미하는 중요성 내지 심각성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하고자 한다. 기적은 경이, 능력, 기이한 사건, 표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 중에서 가장 첫 번째의 것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또 그가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 오시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암시된다.


요한2,1절은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라고 말한다. 갈릴래아는 가난하고 멸시받는 곳이었다. 혼인이란 인간 생명이 지속되는 수단이며, 혼인 잔치는 인간 생명을 즐기고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미래적인 구원의 때를 혼인 잔치라는 상징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것같이(이사62,2-5; 호세2,16-25), 여기 카나의 혼인 잔치도 하느님을 통한 모든 인간적인 삶의 궁극적인 성취와 행복을 단편적으로 앞당겨 맛보게 해주는 것으로 체험하게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으나”, 요한은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요한복음는 결코 요한 자신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어머니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이 주의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서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시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요한19,27).


요한2,2-3절은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말하였다. 포도주는 종말적인 기쁨과 삶의 풍요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상징이다(요엘3,18; 창세49,10-12).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그분께 왔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이때 과연 그 아들의 신적인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동안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묵상 중에 이의 진실을 보여주셨음을 나는 감히 증언할 수 있다! 그 진실은 이러하다! 그 아들을 성령으로 잉태하고 낳고 기르신 어머니로서의 직감과 이상이, 바로 이 상황이 사망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려고 오신 그 아들의 공생애의 시작임을 직감하고, 그 아들에게 그것을 일깨우신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아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너는 충분히 그것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라고 충고를 했든 것이다! ! 어머니만은 그것을 알 수 있다!


2,4-5절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하였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여인이시여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구나이라는 호칭 속에는 따뜻함이 들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대신 여인이시여라고 부름으로써 그 어머니께는 약간은 냉혹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는 번역은 원문상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표현으로, 이 말은 나의 길을 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시오라는 뜻을 가진 고전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마르1,24; 5,7). 이 히브리적 어법도 역시 그분에게 냉혹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은 여인이시여,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냉정하게 말하며, 이제 공생애에 들어가면서 예수님과 그 어머니 간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곧 이제부터는 타고난 인간적인 어머니의 충고를 듣는 때가 지나서이제부터는 오직 자기에게서 바른 때를 정하시는(7,6-8),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만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암시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어법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그 요구 자체의 한계성을 지적하거나, 혹은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통고하는 표현 방식이다. 곧 아무도 주님께 무엇을 강요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자기에게 그 바른 때를 정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만 전적으로 따라야만 한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때는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의 때이다! 그리고 이때는 동시에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되는 때이며,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 세상을 위하여 열리는 때이다. 이때는 아직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만, 그 작용에 있어서는 오늘 본문의 ‘표징을 통해서 이미 지금 현재적인 것이 된다! 여기서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자기의 사람들에게 선물하시는 생명 또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7,37-39).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하는 지시는 그 아들에 대한 복종을 나타낸다. 그녀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 아들의 능력을 신뢰했다! 주님은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어머니에게 순종함으로, 일꾼들에게 정결례에 쓰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고 지시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러한 상황을 알고 계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는 첫 표징은 이렇듯이 성령께서 그의 어머니에게 준 영감을 아들이 순종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알렐루야!


2,6-8절은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각각 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채워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항아리를 가득 채웠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이제는 떠서, 잔치 주관자(연회장)에게 갖다 주어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갖다 주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돌항아리 여섯(각각의 항아리의 용량이 두 세통 드는) 안에 있던 물은 식사 전과 혹은 식사 후에 유다인의 결례에 따라 준비되어 있던 것이었다(마태15,1-2). 이제 옛 질서와 새 질서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요한4,13; 7,38-39). 아마도 그 돌항아리들이 밖에 놓여 있었기에 그 잔치를 책임지고 있는 연회장은 그들이 지금 결례에 쓰일 돌항아리의 물을 마시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유다인들에게 그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인들은 그 물을 펐다 주었고, 그 물은 포도주가 되었다!


유다인의 결례를 따라 놓여져 있던 돌항아리 여섯은 옛 계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의 영적인 의미는 잔치를 치르기에 불충분한 옛 계약은 새 계약으로 대치해야 한다는 것이며, 바로 카나의 혼인잔치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아들이 임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머니의 직감이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좀 앞서가는 나서는듯한 말을 하도록 했든 것이다.


2,9-10절은 연회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라고 말한다.


연회장이 포도주를 맛보고 그것이 이전에 마시던 것보다 훨씬 우수한 것을 알았다. 대개는 맛있는 포도주를 먼저 내고 후에 질이 떨어지는 것을 냈으나, 이번에는 나중 것이 가장 좋은 포도주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이 기적이 시사하는 바는 옛 계약의 질서(유다교)보다 새 계약의 질서(그리스도교)가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2,11절은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기적의 의의는 요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영광, 곧 하느님의 나타나심에 있었다! 하느님의 심판의 표식으로서 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던 모세의 사역과는 대조적으로(탈출7,14-24), 예수님은 기쁨과 행복을 동반하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위대한 창조주이며,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서의 예수님을 계시하고 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 첫 번째 기적은 예수님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사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2코린5,17).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이 처음 믿음은 이제 단련 받아야 했고, 또한 로고스이신 예수님의 점진적인 계시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나갔다. 물론 그들은 이 시점에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없었다(요한20,8-9).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죽음보다 더 진한 고난 중에, 그분을 만나 성령 세례의 은총을 받기 전에는, 나는 사망으로 가득찬 물항아리였음을 고백한다. 죽음을 맛보던 고난 중의 어느 날 내 안에 참 믿음이 생겼을 때, 그분은 내 영 안에서 내 사망의 물을 생명의 포도주로 바꾸셨다!

 

내가 그분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내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쳤을 때는 더욱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갔으나, 마침내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내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자아를 죽음에 넘겼을 때, 비로소 내 사망의 물은 생명의 포도주로 변화되었고, 그분은 내 안에서 살아 있는 인격이 되셨다!

! 이제는 내 사망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그 문제를 주님께 온전히 가져가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 물(사망)을 포도주(생명)로 바꾸어 주신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조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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