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다양성 속에서 복음 선포를 / 복음의 기쁨 11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0 조회수638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문화적 다양성이 교회의 과업인 복음 선포에 아무런 저해 요인이 아니란다. 오히려 하느님의 백성이기에 모두가 복음화를 해야 한단다. 사실 복음화를 일으키는 기본 단위가 교회 공동체일 게다. 따라서 삼위일체에 뿌리를 둔 신비체인 교회는 순례와 복음 선포를 하면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공동체가 ‘복음화를 위해 그분 쪽으로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다.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를 한다면야, 그것이 교회의 일치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게다. 그것은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신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바꾸어 주시어 우리가 복된 삼위일체의 완전한 친교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시기에. 이 복된 삼위일체의 온전한 친교 안에서 ‘모든 것이 분명히 일치’를 이루리라.

 

또한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조화와 친교를 구축하신다. 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의 유대인 되신 것처럼, 바로 그 조화 자체이시기에. 은사의 풍성한 다양성을 가져온 분은 바로 성령이시다. 교회는 인간이 그 활동의 주도권을 쥐는 게 아닌,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는 성스러운 자리이기에 그분의 은총이 늘 넘친다. 그분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 ‘공동체를 끌어당기는 조화인 일치’를 일구어 주시시라.

 

복음화는 성령께서 교회에 부어주신 이 다양한 보물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공동체는 그 고유한 문화로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그리스도교를 단일 문화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강생의 논리를 올바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화가 복음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계시된 메시지가 그 문화와 동일한 것은 아닐 게다. 어쩌면 그 문화를 초월하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화의 복음화에서, 혹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문화의 복음화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 문화 형태를 복음의 제시와 함께 강요하는 불가피한 일이 결코 아니리라. 우리가 선포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어떤 문화적 모습을 띠게 될게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때로는 허황된 신성화에 빠져 참된 복음화의 열정대신 광신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문화들이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교 사상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계시된 메시지는 그 어떤 문화와도 동일시되지 않는 문화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의 복음화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어도 특정한 문화 형태를 복음 선포를 위해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어쩜 당연할 게다. 그래서 ‘하나의 백성인 모든 공동체’는 다양한 문화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복음 선포를 하여야 한다.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