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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0 조회수1,058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As long as they have the bridegroom
with them they cannot fast.
No one sews a piece of unshrunken cloth
on an old cloak.
If he does, its fullness pulls away,
the new from the old, and the tear gets worse.
(Mk.2,19.21)
 
 
제1독서 1사무 15,16-23
복음 마르 2,18-22
 
저는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새벽 3~4시면 일어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지요. 이런 저를 사람들은 ‘새벽형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원래부터 새벽에 잘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학생 때에는 아침 기상 시간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해서 늘 제 동창이 저를 깨워주었습니다. 이랬던 제가 새벽형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새벽에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제로 잘 살기 위해서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찾다보니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던 것이지요. 신학생 때에만 새벽 시간은 저와는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새벽 시간인데, 벌써 16년째 새벽을 열고 있습니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우리 삶 안에서 내가 달라져야 할 절실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면 과연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왜 어렵냐고 여쭤보면 의지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절실한 이유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은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지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서 신랑이 있을 때에는 단식하지 않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단식할 것이라고 답변하십니다.

참된 단식은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절실한 이유가 있을 때 참된 단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에서 훌륭한 사람의 자질을 가늠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로 판결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절실한 이유를 가지고 합당한 단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단순히 형식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희망을 느끼고 있는 그래서 행복해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애벌레 속에는 훗날 그것이 나비가 될 거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다(버크민스터 풀러).


갑곶성지의 50주년 기념 영성센터.

 

내 손 안의 손금

어느 날 한 아이는 슬픈 기색을 보이며 동네의 지혜로운 어르신께 말했습니다.

“어제 어머니께서 점을 보셨는데 제 운명은 엉망이라고 했데요. 저 이제 어떻게 해요?”

어르신은 잠깐 동안 침묵하더니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손금을 조금 보는데, 어디 정말로 그런지 손을 좀 보여줄래? 음……. 이것은 감정선, 이것은 사업선, 이것은 생명선, 자아, 이제는 주먹을 꼭 쥐어보렴."

아이는 주먹을 꼭 쥐면서 말했습니다.

“정말로 엉망이에요? 제 미래가 그렇게 나쁜가요?”

어르신은 주먹을 쥔 아이에게 “얘야, 그런데 네 감정선, 사업선, 생명선이 어디에 있지?”라고 묻자, 아이는 곧바로 “바로 제 손 안에 있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어르신은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바로 네 운명은 주먹을 쥔 네 손 안에 있는 것이란다.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니지. 따라서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네가 의지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네 운명도 바로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남의 말에 따라 내 운명이 바뀐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내 운명은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분명히 내가 바꿀 수 있습니다. 멋지고 행복한 운명으로 말이지요.


영성센터의 식사. 맛있겠죠?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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