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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0 조회수990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6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Look! they are doing

what is forbidden on the Sabbath!"

Then Jesus said 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Mk.2,24.27)


 

 
제1독서 1사무 16,1-13
복음 마르 2,23-28

10년 전, 제가 갑곶성지 초대 신부로 생활하고 있을 때에는 먼저 제의를 입고 입당해서는 기타를 들고 치면서 입당 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런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은 정말로 특별했어요. 반주도 직접 하고, 미사 해설도 직접 하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거예요? 다시 갑곶성지에 오셨으니까 10년 전처럼 반주를 직접 하시면 어때요?”

저를 정말로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 당시에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반주할 사람이 없었고, 미사 해설 하시는 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던 것이지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새벽 묵상 글도 그렇지요. 2001년부터 썼다고 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식사 하는 것을 그 누구도 특별하다고 하지 않지요. 그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고, 그래서 식사를 할 뿐인데 “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감탄하지 않습니다. 제 새벽 묵상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A4 2장씩 쓰다 보니 밥 먹는 것처럼 하나의 습관으로 제게 자리 잡은 것입니다. 어려울 것 같지만, 매일 하다 보니 이제는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일 뿐, 전혀 어렵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란 이렇게 실제와 다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기 생각만이 옳은 것처럼 주장을 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거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면서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을 지적하면서 예수님께 따지듯이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왜 밀 이삭을 뜯는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요? 그들은 율법을 확대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율법을 가지고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그 중에서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 자체도 확대 해석합니다. 밀 이삭을 뜯었으니 ‘추수’라는 일을 한 것이고, 밀을 먹기 위해 손을 비벼서 밀 껍질을 벗겨냈으니 ‘타작’이라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인데, 오히려 사람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만들어진 것처럼 된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보다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생각과 판단이 불러일으킨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라고 말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늘 정답은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풍경이라면, 누군가 건넨 친절과 사랑은 잊히지 않는 기억의 의자가 된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10년전, 기타치며 미사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우분투

전에 근무하던 교구청 근처에는 ‘우분투’라는 파스타집이 있습니다. ‘가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그 집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얼마 전에 어떤 책에서 본 글을 통해 가게 이름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을 방문한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놀이 하나를 제안했다. 그곳에선 구할 수 없는 딸기가 든 바구니를 나무 옆에 두고 말했다.

“얘들아, 달려가서 저 바구니를 먼저 잡는 사람이 딸기를 가지는 거란다.”

아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과일 바구니 앞에 다다르자 모두 바구니를 둘러싸고 앉아 딸기를 나눠 먹으며 즐거워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맨 먼저 간 사람에게 과일을 주겠다고 했는데 왜 다 같이 손을 잡고 달린거지?”

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 입에서 ‘우붙누’라는 말이 나왔고 한 아이가 덧붙여 얘기했다.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해 슬픈데 어떻게 나만 먹고 기분이 좋나요?”

우분투는 원주민 언어로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뜻이었다.

‘우분투’를 잊지 마십시오. 함께 하는 모든 이가 바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입니다. 그렇게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가게였는데 한 번도 못 가봤네요. 다음에는 꼭 가봐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새벽묵상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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