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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은 그분의 일을 할 사람을 모집하지 않으셨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0 조회수999 추천수1 반대(0) 신고

(E-1-5) 영적인 사람/ 하느님은 그분의 일을 할 사람을 모집하지 않으셨다! (사도10,19. 16,7)


사도행전은 우리가 영적인 일을 시작하는 좋은 거울이다! 이 책에서는 몸을 드려 전도하다’, ‘뜻을 정하여 주의 일을 하다’, ‘선교사가 되다’, ‘신부나 목사가 되다’, ‘수녀나 수사가 되다라는 말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책에서 성령 자신께서 사람을 보내신 것과 성령께서 사람을 보내어 일하게 한 것만을 볼 수 있다. 알렐루야!


하느님은 그분의 일을 할 사람을 신학생 모집하듯이 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을 보내셨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기 일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분의 일을 위한 일꾼을 택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일에 있어서 사람의 육체의 뜻은 어떠한 지위도 없다!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라면 바오로는 거절할 수 없었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베드로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고넬료)를 방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자기의 일을 다스리시고, 인간적인 어떤 것도 그 안에 혼합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그분의 일을 위해 일꾼을 보내시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영적인 일의 시작은 주님 자신의 부르심으로부터 기인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친척이나 성직자의 권면이나 격려나, 자기의 성품이나 기질로 미루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또는 독신 생활이 좋아서, 거룩한 말씀에 남보다 더 민감하다고 해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신을 신지 않은 사람만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땅에 서 있을 수 있다! 성령의 부르심에 의해서가서일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와서일하는 것에 기인하는 시행착오들이 얼마나 교회를 실패와 헛수고와 분란함과 심지어 갈등과 분열로 타락시키고 있는가? 제복이나 외형이나 권위와 율법의 시대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 사람의 그릇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영인가? 아니면 혼인가?’로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수 있는 소망의 시대가 이미 가까이 도래한 것이다! 하느님의 시대적 경륜은 참으로 놀랍다! 알렐루야!

 

더구나 어떤 사람이 주의 일을 하기에 선택되었다 하더라도, 선택된 일꾼은 결코 자유로이 무엇이든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육체로 본다면 세상에는 영적인 일보다 더 속박이 많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부르심에 의하지 않은 사람이 성직자 수도자가 되면, 하느님의 교회와 많은 믿는 이들이 넘어져 사망과 타락으로 떨어진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말씀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성령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되”(사도10,19).

주님이 그에게 이르시되”,“성령이 그에게 이르시되”, “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13,4).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16,7). 곧 사역하는 사람은 성령의 명령을 듣는 것 외에 스스로 무엇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당신은 내가 말하려는 주제를 이제 알겠는가?

사도들이 한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다만 직감 안에서 성령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좇아 행하는 것이었다! 만일 영적인 일을 자기 자신이 힘써 계획하고 계산해보며 지배하고 염려해야 하는 것이라면, 영적인 일은 태어날 때부터 재능 있고 총명하며 학식이 있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육체에 속한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신다!


믿는 이들의 영이 주님에 대해 거룩하고 살아 있으며 능력으로 충만해 있다면, 그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을 수 있고 가장 효력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지배하는 권위를 믿는 이들에게 준 적이 결코 없으시다! 그분은 믿는 이들이 영 안에서 그분이 알려주신 것을 듣기를 원하신다!


비록 사마리아 지방에 대부흥이 일어났지만 필리포스(빌립)는 거기서 온전케 하는 일을 계속할 책임이 없었다. 그는 즉시 그곳을 떠나 광야로 가서 이방의 에티오피아의 내시를 구원해야 했다(사도8,26-40). 비록 하나니아스(아나니아)가 바오로가 주님께로 회심한 일을 들어본 적이 없고, 이성적으로 본다면 바오로에게 가서 중보기도를 하는 것은 너무도 불편한 것이었지만, 하나니아스는 주님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사도9,9-19).


비록 유다인의 규례에 의하면, 유다인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왕래할 수 없었으나 성령께서 말씀하셨으므로 베드로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고, 이방인 코르넬리우스(고넬료)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다(10,17-33). 비록 바오로와 바르나바(바나바)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허락지 않을 권리가 있다(16,7-10)! 그러나 나중에는 아시아로 인도하여 에페소 교회를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모든 일은 성령의 손에 있고 믿는 이는 다만 복종할 뿐이다! 사람의 사상과 선악에 의하면 당일에 사도들은 마땅히 가야할 곳은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간 것이다! 이러한 체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따르는 것은 우리의 사상과 지식과 선악과 결정이 아니라, 영 안에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임을 알려준다! 또한 이것은 성령이 우리의 사상과 선악과 지식과 결정에 의해 우리를 인도하지 않고, 그 반대로 우리의 사상과 선악과 지식과 의사 결정은 많은 때 영 안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인도하심과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도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었을진대,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며 염려스럽다! 오늘날 교회의 거의 모든 어려운 일들이 바로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임을 직시해야한다! 곧 성령의 인도와 보내심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 졸업장으로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성경 몇 줄도 읽어본 적이 없이 주일 미사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는 대부분의 믿는 이들! 그들이 만든 그 많은 교회 조직과 기관들! 이것은 성경에서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들이 아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불러가서하라고 하신 모든 일은 다 영의 직감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이다! 믿는 이가 자기 생각의 사상과 감정적인 작용과 의지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면 하느님의 뜻은 빗나가게 된다! 오직 영에서 난 것만이 영이다! 그러므로 육체로 하는 일은 영의 일이 아니다! 믿는 이들의 모든 일은 하느님을 믿고 기다리며 영 안에서 계시를 받은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육체가 들어오게 된다!


하느님이 우리를불러하라고 하신 모든 일들에 있어서는, 그분은가서일할 영의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여기에 한 가지 으뜸 되는 원칙이 있다! 곧 우리의 일은 결코 우리 영 안의 능력을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을 지나서 일을 한다면, 우리는 자기의 타고난 능력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시작이다! 결국 도를 넘어서서 일하는 것은 영을 좇아 행하게 하지 못하고, 또한 실질적인 영에 속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과 혼합되게 한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모두 이성과 사상과 이유와 감정과 애호와 갈망과 욕망 등을 일하는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혼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영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 우리는 이것들이 좋은 주인이 아닌 좋은 종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따른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영에 속한 일은 영으로 비롯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하느님은 영이 아닌 곳에서 그분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으신다!

다른 사람이 영적인 도움을 청할 때에 영적인 사람은 결코 자신의 혼적인 감정이 영적인 관계를 이기게 해서는 안 된다. 깨끗하게 남의 영성을 돕고자 하는 것 외의 다른 혼적인 감정은 모두 사람에게 해가 된다. 이것은 언제나 영적인 사람의 위험과 함정이다! 혼적인 것, 곧 사랑, 애정, 근심, 걱정, 흥미, 열심 등은 모두 온전히 영의 지시 하에 있어야 한다! 이 규범을 어겼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에 크게 알려진 어떤 성직자들은 사실상 세속화되어 도덕적인 실패와 영적인 실패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과 갈망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영적 직감으로 성령의 인도로 여겨지는 일만을 해야만 한다! 육체는 결코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수 없다! 우리의 영적인 유용성의 크고 작음은 십자가가 얼마나 깊이 우리의 육체를 제거하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르게 말한다면, 외면적으로 우리가 성취한 것이 얼마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십자가에 못 박은 믿는 이들을 통해 이루신 일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순수하게 주님을 위한다든지, 좋게 되기 위해서라든지, 열심이라든지, 수고하는 것이라든지, 타고난 재능과 지식을 은사라고 한다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라든지, 천국을 위한다든지, 아니면 제사장이나 중세 수도자들을 흉내 낸 화려하거나 신비한 제복으로 권위를 나타낸다든지, 이 모든 것은 육체를 가리기에 충분치 않다! 하느님은 그분 홀로 역사하기를 원하시고 육체의 간섭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조차도다른 불영적이지 않은 것을 드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들이 세상에 흉하게 수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들은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격동케 할 뿐이다! 우리 영 안에서 성령에 의해 켜지지 않은 모든은 다 하느님이 죄로 보시는다른 불이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해서 다 하느님의 일인 것은 아니다!


그분을 위해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문제는 누가 하느냐에 달려있다! 당신은 내가 지금 간절히 호소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겠는가? 만일 믿는 이의 영으로부터 하느님 자신이 해내신 일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자기 자신의 활동과 자기 힘으로 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계산되지 않는다! 육체에서 나온 것은 다 육체와 함께 망할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만이 영원히 남는다! 오직 하느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것만이 헛되지 않다!

알렐루야! 아멘


<보다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영적 성장과 영적인 사람을 처음부터 필독서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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